권도옥 단편집"그래도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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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지난 88년 『이 세상 사는 동안』으로 「문예중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권도옥(36)씨가 첫 단편집 『그래도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를 민음사에서 펴냈다.
작가 후기에 나오는 「네번의 자살기도」가 알려주듯 권씨는 90년대를 어두운 방에서 자신의 80년대 상처를 하으며 하루하루신경안정제를 먹고 버텨냈다.
두차례의 입원까지 몰고온 발병전 쓴 4편과 발병후 쓴 4편등8편을 모은 이 소설집은 「80년대 운동가로서의 삶을 실천하지못한 자신」「사회주의자이면서 자유주의자였고 동시에 무정부주의자였던」요컨대 아무주의자도 아니었던 자신에 대해 스스로 가한 자폐(自閉)의 형벌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다시 글을 쓰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권씨의 소설은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랫동안 가혹하게 그 사람을 괴롭히는가를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씨의 소설은 특히 운동권의 후일담이 아닌 아마 자의식의 과잉에서 비롯된 듯한 한 상처입은 영혼에 대해 진술하고 있어 그절절함이 더하다.
권씨는 데뷔작에서 비록 80년대를 향한 기억엔 독이 들어있고정치적 쓰레기더미가 너절했지만 그래도 명동성당의 첨탑이 메시아처럼 찬연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을 오래도록 보고 서있었다며 희망을 잊지않았다.
그러나 곧 작가의 분신으로 느껴지는 각 소설의 서술적 자아는「그 먼 기억 속에 탄탄했던 미래가 오늘은 시궁창에 빠져 너절한 걸레로 발견된 것처럼,오늘의 미래는 내일 쓰레기통에서 구겨진 채 뒹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무에 빠져들 고 거울 속의자신을 들여다보며 「저 얼굴엔 과거가 말라붙어 있다」는 절망의늪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발병후 권씨의 소설은 비록 초기작의 소설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정신이 분열되는 광기의 내면에 대해 스스로 정신분석을 시도하고 있어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다른 감동,곧 자신의 비참함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그로부터 자아를 되 찾으려는 힘,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하는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있다.
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권씨의 소설에 대한 해설에서 『80년대에 관한 후일담 소설이 일반화한 「나만 순결하고 나만 억울하다」는 자기옹호에서 벗어나 생활인으로 실패한 광인,또는 환자인 자신의 광기를 들여다보고 그로부터 삶에 새로운 출 구를 뚫고있다는 점에서 순결한 소설』이라고 평했다.권씨 스스로 후기에서 『이제 내 정신적인 생각에서 탈피해 타인들의 다양한 삶을 그리기 위해 괴로워 할 것』이라고 썼다.
80년에 대해 공소권 없음,또는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값싼 면죄부를 내주며 「그 시대가 지났음」을 선언하지만 인간 내면의 상처는 그처럼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80년대로 인한 상처든 아니든 여기저기서 화려한 축제를 벌이고 있는 그 순간 아직도 어두운 방에서 고통에 떨며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권씨의 소설은 아프게 상기시키고 있다.
李憲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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