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도보기행 ③ 돌계단 지나서 ‘핀치오 언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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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石)의 예술 그리고 핀치오 언덕

작곡가 권오경(32)의 발걸음을 따라 계속되는 이탈리아 여행. 그녀가 소개하는 세 번째 장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덕으로 손꼽히는 핀치오(Pincio)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곳에서 언덕 너머의 석양을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찬미하고 또 찬미했다.

로마제국 역사는 언덕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원전 10세기 경 ‘팔라티노’라는 작은 언덕 사람들은 훗날 자신의 후세들이 지중해 전체를 장악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자손들은 지중해 통치는 물론 수백 년간 치세를 유지하며 다양한 문화를 탄생시켰다. 특히 17세기에 생겨난 바로크 예술은 로마의 위세를 생생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각, 건축술을 부흥시켰다.

언덕의 후예들은 심미안이 뛰어났다. 특히 부감(俯瞰) 구성력이 탁월해 입체적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데 남다른 재주를 선보였다.
이 탁월한 재주는 콜로세움에 집결했다. 동시대의 경기장 건축양식을 보면 단순히 넓거나 웅장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콜로세움의 건축방식은 좀 더 섬세하다. 건축물 높이와 방향, 시간에 따라 태양이 각각 어떻게 비춰지는지 또 바람의 반향이 건축물의 구조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일일이 염두에 둔 건축 공학이다.
부감(俯瞰)구성이 자유로운 유전자적 특징은 디테일한 세공 예술보다 조형미와 공간미를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로마의 명성을 이어주는 유적지를 떠올려보자.
가령, 시인이자 철학자인 니콜로 실비가 만든 트레비 분수는 어떤가. 이 분수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로마신화 속 주인공들의 조각상이다. 전 세계 수백 수 천 만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포로 로마노는 어떤가. 원로원과 개선문, 신전 등이 아름다운 조각 건축물로 굳건히 서 있다.

로마를 빛내는 이 모든 것들은 바로 돌(石)이다. 로마의 찬란한 유적 역사는 곧 ‘돌’의 생명이자 인내인 것이다. 지금도 로마 곳곳에는 수천 년 전 수레와 말이 통행했던 도로가 그대로 쓰인다. 작은 돌을 정교하게 박아 만든 돌길 위로 자동차가 특유의 ‘돌돌돌’ 소리를 내며 현대의 삶을 잇고 있다.
로마인들이 언덕을 유독 사랑하는 이유도 사방에 깔린 이 돌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하학적 예술미와 견고함을 자랑하는 돌조각, 돌건축, 돌길이지만 산책만큼은 부드러운 흙을 밟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하여 로마인들은 곳곳에 솟아오른 언덕을 가꾸며 균형을 맞춰왔다.

이처럼 2,750년의 긴 생명을 돌과 언덕, 그리고 예술로 지탱해온 로마. 이 중에서도 최고의 언덕으로 칭송받는 곳이 바로 핀치오(pincio) 언덕이다. 핀치오 언덕은 4세기경 이 땅을 소유했던 영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아름답고 탁 트인 전경 때문에 나폴레옹은 로마를 점령하자마자 이곳에 전용 전망대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언덕 사이사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작은 숲 속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종려나무 등이 울창하고, 산책로가 일품인 시민공원에는 ‘주세페 만차니’의 솜씨로 조각된 이탈리아 영웅들의 흉상이 서 있다. 이 언덕에는 나폴레옹 테라스로 유명한 식당 겸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로마의 해질녘 광경은 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황금빛 비경이다. 석양 전망대를 빠져나온 길 중앙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 청년 노예를 연민하며 기리기 위해 세워둔 오벨리스크가 있다. 핀치오 언덕의 트레이드마크인 물시계를 지나 언덕 끝까지 걸어가면 사방이 돌로 둘러싸여 있는 로마 도심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언덕 뒤로는 양탄자처럼 포근한 숲이 깔려있고 발밑으로 펼쳐진 도시에는 온갖 아름다운 조각과 건축물이 가득한 로마. 그렇게 핀치오 언덕에 한참 서서 로마의 절경과 석양을 맛보고 있노라면 이 견고하고 성스러운 도시를 탐했던 나폴레옹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핀치오 언덕 가는 법
로 지하철 A선 플라미니오역 ‘포폴로 광장’에서 내린다. 광장 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카라밧지오의 그림이 있는 포폴로 성당이 있다. 로마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축물인 성당을 지나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간다. 걷다 보면 돌계단 길이 나온다. 그 길을 5분 정도 올라가면, 핀치오 언덕이다. 가는 길에 이정표가 없으니 한국인들은 포폴로 광장까지 갔다가도 언덕위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tip: 로마의 걷기여행 주의사항
-사복을 입은 사람이 경찰이라고 배지를 보여주며 검문을 요구하더라도 그 어떤 증명서도 꺼내놓으면 안 된다. 특히 여권을 보여주면 위조 여권 같다며 신원을 확인할 만한 신용카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로 카드를 넘겨주면 안 된다.
- 최대 관광지인 만큼 지하철 소매치기가 극성이다. 중요한 증명서나 큰 액수의 여행경비를 잘 단속해야 한다.
- 길을 걸을 때 지갑을 꺼내 보이는 것은 소매치기나 좀도둑을 불러들이는 위험한 행위다.
- 로마여행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구두를 포기해야 한다. 오래 걸어도 발이 피로하지 않은 편안한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 여행지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는 미리 공부해두면 훨씬 풍요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출처/ 로마 현지 가이드 www.conangelo.com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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