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소가 비상구 표지판 보고 나가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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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27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공무원교육원에 각 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모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였다. 내년 예산과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재정운용기조를 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다루는 주제가 중요해선지 회의 형식도 유별났다.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토론한 뒤 일단 퇴근했다가 28일 오전에 다시 모이는 ‘무박 2일’ 일정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이 회의의 이름은 ‘재원배분회의’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국가의 예산을 단순히 ‘배분’하는 게 아니라, 마치 기업들이 투자 관련 회의를 하듯 전략을 짜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해 회의 명칭이 바뀌었다.

◇“소가 비상구 표지판 볼 수 있나”=이 대통령은 27일 모두발언의 대부분을 소와 관련된 소방법 문제에 집중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26일) 경기도 포천의 한우농가 ‘한창목장’을 찾았다. 품질 고급화로 한우의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 사례로 중앙일보가 4월 24일자에 보도한 목장이었다.

이 대통령은 전날 농민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축사에 적용되는 소방법을 거론했다. 규제 개혁을 강조하기 위한 예시였다. “축사를 짓는 데 소방법 때문에 까다로워서 못 짓겠다고 하더라. 소방법에 의해 비상구 표지판을 붙였다고 해서 소가 그걸 보고 나갈 것도 아닌데…. 내가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못하겠더라. 따지고 보면 축사에 무슨 비상구 표지판 붙이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유사시에 소에게 비상구로 나가라고 교육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을 바꾸려면 이런 걸 바꿔야 한다. 축사 짓는 사람도 (이런 소방법은) 안 지킬 것 같다. 소방서가 시비를 걸려고 하면 거는 것이고, 그래서 비리가 생긴다….”

이 대통령은 또 일본 화우(和牛·일본 발음으로는 ‘와규’)를 거론하며 축산업 경쟁력 강화를 당부했다.

“일본 화우 같은 것은 우리 쇠고기 값의 10배다. 소 한 마리의 가격이 1억원 하는 소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데 그러면 일본처럼 개방해도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가 많아질 거다. 앞서가는 축산농가는 쇠고기 개방을 해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 대통령은 전날 한우 농가에서 “최종 소비처인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만 바로잡아도 한우 소비가 늘어난다. 원산지 표시 하나만은 확실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산 늘리기보다 ‘있는 예산’ 효과적으로”=이 대통령은 이날 “재정 여건상 운신의 폭은 작지만 예산 편성과 재정 운용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새 정부의 색깔에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7% 성장 목표와 관련해 “10년의 장기 목표를 갖고 비전을 제시한 것이 사실”이라며 “당장 올해에 그 수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내년에도 달성할 수 없다고 쳐도 7% 성장을 위한 기초를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초가 없이 그저 무리한 재정 운영으로 성장하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1∼2년 목표가 미뤄지더라도 건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예산 운용과 관련해 “예산을 늘려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4% 후반대의 저성장 경제를 전제로 했던 전임 정부의 재정계획 기조를 7%대의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로 전환하고 ▶2012년까지 22% 수준의 조세부담률을 20%로 낮추며 ▶국내총생산(GDP) 33%대의 국가 채무를 30% 이하로 낮추고 ▶기존 적자재정을 2012년까지 균형재정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의 재정 기조를 보고했다.

참석자들은 ▶방송·통신 융합과 문화 콘텐트 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 및 중소기업 지원 확대 ▶기후변화 산업 및 에너지 자원 개발 투자 ▶작은 정부 운영을 통한 예산 절감 ▶복지 전달 체계 정비를 통한 복지 지출의 효율화 등을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 최상연·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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