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보통 국가와 특수 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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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느 누구나 자기 조국의 변함없는 발전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은 영원해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나라의 모양이나 내용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지구상의 어느 나라든 나라의 구조와 규범은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맞춰 조정돼 나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을 비롯한 문명의 변화,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른 국제적 역학관계의 변화 등에 적응하면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선택을 이어가는 과정은 어느 나라도 피할 수 없는 생존의 절대조건이다. 우리는 물론 우리 주변국가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 중국도 북한도 '특수 국가' 지칭

일본 사람들은 일본의 국가적 성격과 방향을 논의하면서 '보통국가'라는 특수한 용어를 사용한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면서도 독자적 군사력을 보유할 수 없는 헌법적 제한에 묶여 초강대국인 미국의 보호막 안에 안주하는 일본을 '특수국가' 또는 '비정상국가'라고 진단해 언젠가는 다른 나라들과 동등한 모습과 실력을 갖춘 '보통국가'로 지향해야겠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이 가져온 충격과 무력함 속에서 받아들인 헌법9조, 즉 '일본은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 무력의 사용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약속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현실성을 지녔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통국가로의 변신이 군국주의 일본제국으로의 환원을 뜻하지는 않겠으나 과연 일본이 지향하는 보통국가의 모습은 어떤 내용을 지닐 것인지, 더불어 이웃나라와는 어떤 관계를 키워갈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우리 주변에 보통국가이기가 어려운 나라가 또 있다면 물론 중국이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13억의 인구를 지녔다는 것만으로도 중국은 보통나라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 13억의 중국인이 하루 세끼를 배부르게 먹는다는 것이 기적처럼 생각됐던 것도 지난날의 일이며 10년 넘게 고도성장을 계속하는 오늘의 중국은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확고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시장경제의 원칙을 과감히 수용한 개방정책을 통해 놀랄 만한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기획하고 있는 미래의 국가상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는 쉽지 않다. 경제발전이 수반하는 빈부 및 지역격차와 개방화가 수반하는 시민문화의 확산을 어떻게 공산당 통치체제와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은 결코 보통의 작업이라 할 수 없다.

스스로 처음부터 특수국가라고 지칭하고 나오는 경우가 바로 북한이다. 어느 국제회의에서 왜 북한은 여타의 나라들과 같이, 즉 보통국가처럼 행동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북한 측 대변인은 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북한은 보통국가가 아니며 특수국가다. 우리는 아직도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 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강점으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키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특수한 국가이므로 평화로운 환경에 있는 보통국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와 같이 특수국가로서 전쟁상태에 있다는 북한이 개방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주민복지의 희생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북한이 선택한 특수성은 동북아공동체 같은 지역발전의 논의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북한의 한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 통일된 독립국가 완성해야

우리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도 결코 평탄한 보통국가의 행로는 아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또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난날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오늘의 시련에 좌절하지 않는 국가적 격과 품위를 지키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시비에 얽매이지 않을뿐더러 어수선한 주변 정세에 흔들리지 말고 민족공동체 건설의 이정표를 항시 지켜보는 비전을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

내년 2005년은 분단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6년 후인 2010년은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 빼앗겼던 국치 100주년이 된다. 우리는 단순한 반성이나 갈망보다도 어떤 나라를 어떤 방법.순서.속도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서둘러 조성하고 다 함께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이제는 35년의 식민지와 65년의 분단으로 이어진 100년의 표류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前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