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화장장 님비’ 실용으로 넘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경주시는 지난달 10일부터 화장장을 세울 곳을 공모했다. 경주시는 혐오시설인 만큼 신청자가 없을까봐 걱정을 했다. 23일 공모 신청을 마감한 결과는 의외였다. 개인과 단체·법인을 합쳐 12곳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땅에 화장장을 지어 달라고 신청한 것이다. 경주시는 이 중 한 곳에 화장장을 지을 예정이다.

경기도 하남시는 1년7개월째 광역화장장 설치를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화장장 유치를 추진한 시장을 대상으로 주민소환투표를 하는가 하면 지원을 약속했던 경기도와의 반목도 심해지고 있다.

자기 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기피하는 이른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현상에 대한 대처가 경주와 하남에서 매우 대조적이다. 경주시는 공모를 통해 화장장 부지를 확보해 첫 번째 관문을 넘어섰다. 반면 3000억원 규모의 화장장을 건설하려던 하남시의 계획은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경주시의 전략=경주시는 화장장 건설의 핵심을 부지 확보라고 판단했다. 경주시는 화장장을 건설할 땅을 제공하는 개인이나 단체·법인에는 납골당과 장례식장·식당·매장의 운영권을 준다고 약속했다. 땅 제공자와는 별도로 땅이 있는 읍·면·동에도 개발기금 3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시 노인복지과 직원 하길남씨는 “혐오시설인 화장장 부지를 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주민 반발이 예상돼 공모절차를 밟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개인 9명, 단체·법인 3곳 등 모두 12곳이 신청서를 냈다. 신청 지역은 강동면 6곳, 현곡면 2곳, 안강·내남·서면과 용강동 각 한 곳이다. 법인·단체는 장묘법인·기업 등이다. 신청 법인의 대표 배모(48)씨는 “시가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데다 장기적으로는 괜찮은 사업이어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2개월 내에 부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부지는 13명으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에서 서류 심사와 방문 실사를 거쳐 결정한다. 경주시는 1932년에 지어진 동천동 현 시립화장장의 시설이 낡고 화장로도 2기로 턱없이 부족해 194억원을 들여 부지 6만5000㎡에 화장로 8기·납골당·장례식장·주차장 등을 갖춘 화장장을 내년 상반기 착공, 2010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화장장을 건설하려면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마을 단위로 신청한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개인이나 기관이 땅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주변의 주민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시 관계자는 “꼭 필요한 시설이어서 공정하게 부지를 선정하고 인근 주민의 동의도 얻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만 남긴 하남시=하남시는 2006년 10월 광역화장장 유치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화장장 건립비 3000억원 외에 주민지원사업 인센티브 2000억원 등 총 5000억원의 지원을 경기도로부터 받는다는 전제였다. 시는 이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외자를 유치해 대형 아웃렛과 시네마파크 등 복합단지까지 조성할 계획이었다. 예정 부지는 천현동을 선택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범대위를 구성하고 연일 반대 집회와 함께 시장 퇴진 운동을 전개했다.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까지 치렀다. 유효투표율 미달로 김황식 시장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주민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총선 닷새 전인 4일 저녁, 재정 지원을 약속했던 경기도마저 등을 돌렸다. 5월부터 새로 시행되는 개정 장사법에 따르면 화장장 등 장사시설은 해당 기초자치단체가 직접 건립하도록 돼 있어 도가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는 “새 장사법은 광역시·도에도 화장시설 건립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며 “광역 화장장이 시·군별 화장장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남·경주=전익진·정영진·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