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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 여인 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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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4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7구에 있는 와인바 ‘상세르’. 30㎡ 규모의 홀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손님의 대부분은 20대 여성이다. 업소 지배인도 여성이다. 지배인 마리 피스트르는 “예전에는 와인바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40대 이상 남성이었지만 요즘은 젊은 여성 단골 손님이 더 많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수백 년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와인 시장을 여성이 접수하고 있다. 여성의 와인 구입량이 크게 늘고 업계 진출도 활발해졌다. 프랑스 언론은 ‘와인 권력의 이동’ ‘여성의 반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와인 전문지 『요리와 와인』은 “수백 년간 와인의 세계에서 터부시되던 여성이 해방됐다”며 “여성이 프랑스 최고의 소믈리에로 선정된 뒤 꼭 30년 만”이라고 전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IPSOS) 등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할인매장에서 와인을 구입하는 사람 5명 중 4명(78%)이 여성이었다. 프랑스 가정의 생활필수품인 와인 선택권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것이다. 여성의 와인 소비량도 크게 늘었다. 지난 6개월간 와인을 정기적으로 마시고 있다는 여성이 80%를 넘었다. 술꾼 비율이 점점 줄어 70%대에 머물고 있는 남성과 대조적이다. 프랑스 여성은 샴페인 등 스파클링와인(84%)과 부드러운 맛의 레드와인(81%)을 선호한다. 그래서 프랑스 와인업계의 공략 대상도 젊은 여성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르피가로는 24일 “고급 음식점과 와인 회사에서 각광받는 여성 소믈리에가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의 유명 음식점 아피시우스의 카롤린 퓌르스토스, 유명 샴페인 회사인 뵈브 클리코의 세실 본퐁 등이 대표적이다. 보르도 라 라귄느 등 유명 샤토의 와인 품질을 책임지는 카롤린 프레(29·여)는 양조 기술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샤토 주인의 딸로 어릴 때부터 양조 기술을 배운 그는 포도밭과 연구실을 오가면서 탄생시킨 과학적 맛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여성과 바쿠스』의 저자 이사벨 포레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여성이 와인의 맛을 논한다는 것은 터부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에 와인 업계를 강타한 여풍(女風)의 배경은 무엇일까. 1992년 세계 소믈리에 대회 챔피언인 필립 포르 브락은 ‘향수와 요리’에서 찾았다. 그는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그들이 즐기는 향수와 요리 덕분에 와인을 평가하는 데 있어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20대 여성을 자신이 운영하는 바의 소믈리에로 채용했다”며 “세월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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