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지역격차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면 국민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이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주로 수도권 집중 문제를 둘러싸고 논의되어 왔다. 인구와 경제력이 지나치게 수도권에 밀집되었다는 것이다. 2006년 현재 전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48.6%, 제조업체의 51.2%가 모여있는 등 집중 정도가 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경제학에서 수위 지역 문제(primacy problem)라고 부르는 수도권 집중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지역격차가 전 세계적인 현상인 만큼 그 대책 또한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하게 모색되고 검증되어 왔다.
수도권 문제 해결의 기본방향은 국민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담보하면서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시작된 수도권 대책의 기본 방향은 인구와 시설의 수도권 유입을 억제하는 것이다. 다양한 수도권 대책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수도권과 지방이 모두 불만인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립된 ‘제3차 수도권 정비계획’에는 아예 수도권 목표 인구의 절대 수준을 낮추는 계획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엄밀한 검증도 거치지 않고 포퓰리즘의 냄새를 짙게 풍기며 만든 정책의 하나가 175개 공공기관을 강제로 지방에 이전시켜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는 선진국에서도 한때 시도되었으나 비용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고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확인돼 최근에는 대부분 포기한 정책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가 이를 새삼스럽게 더 높은 강도로 시도한 이유는 원인과 상관없이 결과가 같아야 한다는 형식적 평등을 조속히 달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혁신이라는 말을 유달리 좋아했던 노무현 정부가 ‘혁신’이라는 이름을 단 도시들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혁신도시 건설의 이론적 배경은 지역혁신체계(RIS : Regional Innovation System)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90년대 초에 유행했던 RIS는 ‘지역경제의 혁신 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관련 주체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체계적으로 참여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RIS는 실리콘 밸리, 루트 128, 제3 이탈리아, 소피아 앙티폴리스 등과 같이 여러 기관을 한 곳에 집적시켜 성공을 거둔 경우를 관찰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그러나 RIS는 175개의 공공기관을 10개 지역에 인위적으로 쪼개 강제 분산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여러 기관을 한 곳에 모을 때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네트워킹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네트워킹은 참여하는 기관들이 수시로 접촉하는 가운데 유용한 정보들이 쉴 새 없이 교환되고 그러한 정보가 화학적 결합을 일으켜 생산성 증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별다른 관계도 없는 공공기관 10여 개씩을 한 곳에 모아 놓는다고 소기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것이 혁신도시의 효과를 의심하는 근본 이유다. 클러스터를 만들어 실리콘 밸리 등과 같이 성공한 사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패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혁신도시를 기존 방식대로 추진하면 실패 확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물론 지역 균형발전을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개 혁신도시의 위치가 이미 정해졌고 토지보상이 상당한 정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역시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중요한 제약 요인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셈이다. 이미 선정된 10개 지역에 대한 투자는 경제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이유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혁신도시 방식이 지역 균형발전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인가에 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정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가 져야 할 책무인 것이다.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