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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특목고 학생 뒤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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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이윤숙(42·서울 문정동)씨는 매주 토요일 영어교사가 된다. ‘HAFS English 봉사단’ 회원으로 딸 정혜원(외대부속외고·2년)양과 함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딸의 교과 외 활동을 도우려 참가했는데, 자신도 값진 땀을 흘려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현대판 ‘파워 맹모(孟母)’가 뜨고 있다. 특목고 자녀들의 학업 도우미로 동분서주하는 엄마들이다. 이들은 학교와 학생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자청, 자녀들 학업환경 개선에 관련된 일이라면 두팔 걷고 나선다. 무분별한 치맛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좋은 환경이 우등생 만든다
   냄새에 민감한 수진이(2년)는 지난해 학교 어디선가 풍겨 나오는 악취로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외대부속외고 학부모들은 많은 학생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고 학교에 이 사실을 알렸다. 놀란 학교가 즉각 원인 규명에 나섰다. 식당의 음식물 분해기가 주범이었다. 4년전 기숙형 외고로 설립돼 지난해 비로소 3개 학년이 채워지면서 늘어난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기가 감당해내지 못한 결과였다. 즉시 처리 용량을 늘리고 악취 제거 시설도 추가로 설치했다.
 한영외고는 지난해 교실 전체에 공기 정화기를 설치하고 책·걸상을 바꿨다.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공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학부모들의 바람을 학교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또 학부모 이해윤(44·서울 서초동)씨는 매일 딸 지수(2년)와 함께 일찌감치 ‘등교’한다. 학교 식당에 들어오는 식자재 검사를 위해서다. 매주 한번 급식모니터를 맡은 이씨는 “내 아이들 건강은 내가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조리·배식 등을 꼼꼼히 챙긴다.
 
□우리는 학생-학교 간 메신저
   “러시아어 배우기가 너무 힘듭니다. 다른 외국어로 바꿔줄 수 없을까요.” 학생들이 교사에게 이런 얘기를 하긴 힘들다. 그래서 부모들이 메신저 역할을 맡았다. 이 학교 학부모회장인 문귀선(54·서울 방배동)씨가 해당 학생들 고충을 학교에 전달했다. 교사들이 해당 학생들을 1대1로 조사했다. 러시아어를 택한 학생 대부분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 학교는 프랑스어·독일어·중국어·일어·러시아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었다. 학교는 고심 끝에 러시아어를 스페인어로 바꿨다. 학생들도 크게 만족하는 분위기다. 기숙학교인 청심국제고와 외대부속외고는 학부모들 제안에 AP(대학 학점 선이수제) 주말 특강을 열었다. 청심국제고 학부모 엄선희(44·서울 대치동)씨는 “아이가 주말에 가는 AP학원은 너무 비싸 부담스러웠는데 학교가 걱정을 덜어줬다”며 반겼다. 외대부속외고 학부모 서경미(42·분당 금곡동)씨도 “주말에 기숙사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 각종 특강 개설을 건의했다”며 “그 결과 AP강의 외에도 음악 이론반, 각종 검증시험 대비반, 고전문학반 등 많은 종류의 특강이 무료로 개설돼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한 외고에선 사회탐구 과목인 ‘법과 사회’를 다른 과목으로 변경했다.

“로스쿨이 설치돼 법대 지망생이 줄어든 현실을 반영해 달라”는 학부모들 제안에 따른 조치였다.

□자원봉사도 공부다
   학부모 봉사단 발족도 잇따르고 있다. 자녀의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도우면서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청심국제고 학부모들로 구성된 ‘청심 소리회’가 대표적이다. 병원을 찾아 음악 연주를 하는 학생들 모임 ‘청심 프론티어 소리회’의 자매단체 격이다. 지난 2월, 광진 청소년 수련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열었던 기금마련 공연은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김수연(44·분당 야탑동)씨는 “아이들이 먼저 음악회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깜짝 놀랐다”며 “좋은 취지인 만큼 학부모들이 합심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민사고·외대부속외고·이화외고·한영외고 등과 미국·일본 고교 학생들까지 참여하는 연합회로 규모가 커졌다.
  한영외고 학생은 지난해 여름방학, 9박10일간의 몽골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들은 당시 푸짐한 선물보따리를 준비해 갔다. 학부모들이 나서서 수집한 옷 수백 점과 중고 컴퓨터 50대였다. 이미옥(43·서울 풍납동)씨는 “엄마들이 직접 뛰어 이웃들로부터 헌옷을 거뒀다. 때마침 동국대가 중고 컴퓨터를 기증해줘 비행기에 실어 보낼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한영외고의 김상훈 대외협력부장은 “봉사활동에 함께 나서는 부모들이 아이들 학교생활 뿐 아니라 나아가 대학입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김지혁·최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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