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국가경쟁력] 인구 28만 도시, 경주가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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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8만 명의 경주시가 예산 7990억원으로 1조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로 예산 1조원대는 성남시와 용인시 등 인구 50만 명이 넘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경주시의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1500억원 늘어났다. 그 돈으로 경주∼감포 등 곳곳에 새 길을 닦고 있다. 내년에도 1500억원이 증액될 예정이다. 2005년 11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이란 ‘정부 투자사업’을 유치한 덕이다.

내년까지 경주시로 넘어오는 지원금 3000억원은 이 투자의 시작일 뿐이다. 방폐장 건설(1조5228억원)과 함께 약속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양성자가속기(2890억원)에다 유치지역 지원 55개 사업(3조2000억원) 등을 보태면 줄잡아 5조∼6조원이 경주에 쏟아진다.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직원 900여 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매출액이 포스코와 맞먹는 규모다. 한수원은 관련 기업만 7000여 개에 이른다. 이들도 본사 일부가 들어오거나 경주사무소를 낼 게 분명하고, 그도 아니면 경주로 출장을 와야 한다. 한수원은 벌써 사원 모집에서 방폐장 인근 주민들에게 10% 가산점을 주고 있다. 양성자가속기는 첨단산업, 특히 의료기술 분야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백상승 경주시장은 “전국의 의과대학 관련 연구소에서 부지를 알아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며 “방폐장 유치로 경주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경주는 2030년까지 역사문화관광의 바탕 위에 첨단과학이 어우러지는 40만 도시를 만든다는 게 목표다. 주민들은 방폐장 하나로 경주 발전을 적어도 20년쯤 앞당겼다고 말한다. 28일엔 1500년 만에 신라 월정교도 복원을 시작하고, 조만간 황룡사도 복원할 계획이다.

‘투자 유치’로 도시의 운명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인구는 줄고,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대다수 다른 지방 도시와는 대조적이다. 경주시 고해달(55) 국책사업지원과장은 “경주는 방폐장 유치 전까지만 해도 체념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경마장 건설이 무산됐고, 믿었던 태권도공원마저 무주에 빼앗기면서 자조 섞인 한탄이 이어졌다. 그래서 분위기를 반전시키자며 뛰어든 게 방폐장 유치였다. 당시 시민들은 주민투표에서 89.5%라는 절대적 찬성으로 힘을 보탰다.

방폐장 유치로 일자리 만들기도 물꼬가 트이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180여 명에 연인원 8500여 명을 고용했다. 동국대 지역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0월 ‘방폐장 유치에 따른 경주지역 파급 효과’를 분석했다. 2020년 기준으로 경주는 ▶인구 34만여 명으로 5만 명 증가 ▶산업체 수 3만여 개로 1만 개 증가 ▶주민소득 3만8470달러로 2배 증가 등의 파급 효과를 예상했다.

경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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