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Earth Save Us] 썩은 강물을 맨손으로 … 부평 굴포천‘그린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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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명신여고의 환경동아리 ‘푸름’의 초대 회장을 지낸 지민서씨<左>가 19일 후배들과 인천 굴포천에서 하천 정화 봉사활동을 한 뒤 수질 오염도를 측정하고 있다. ‘푸름’회원들은 매달 수질 오염도를 측정해 인천시 등에 알려 준다. [사진=강정현 기자]

12일 오전 인천시 부평1동 굴포천 중류. 잿빛 물위로 썩은 음식물찌꺼기·과자봉지 같은 온갖 생활쓰레기가 둥둥 떠 있다. 가까이 가자 역겨운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때 여고생 38명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인천 명신여고 환경동아리 ‘푸름’ 회원들이다. 쓰레기를 줍고 하천의 오염도를 측정해 인천시에 알려 주는 ‘환경천사’들이다.

푸름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지민서(연세대 간호학과 1년)씨와 후배 서너 명이 하천 물속으로 들어갔다. 썩은 물이 무릎까지 차는 하천으로 장화를 신고 들어간 지씨가 맨손을 물속에 집어넣고 뜰채와 모종삽으로 시꺼먼 바닥 흙을 퍼냈다.

“어휴, 흙이 다 썩었잖아. 냄새도 지독해!” “언니, 피부 괜찮아요?”

여고생들의 탄식과 걱정이 흘러나왔다.

“걱정마, 씻으면 되니까. 환경을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야. 맨발로도 들어갈 용기가 있어야 돼.”

지씨가 비커에 물을 담아 나오자 여고생들이 시약이 들어 있는 수질측정기를 넣고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을 측정했다. 시약은 금세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결과는 5급수. 지씨는 “실지렁이 외에는 다른 생물은 살기 힘든 오염수”라며 “이런 더러운 물이 한강을 거쳐 서해안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했다.

지씨가 이날 후배들을 찾은 것은 2년 전 자신이 만든 동아리 푸름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푸름은 회색 도시를 푸르게 만들고 푸른 나뭇가지처럼 세상으로 뻗어 나가자는 의미다. 지씨가 올 2월 졸업한 뒤에도 새내기 38명이 가입했다. 푸름은 인천지역 5대 하천(승기천·나진포천·공촌천·굴포천·장수천)의 수질오염도를 매달 측정해 인천시와 시민들이 운영하는 ‘하천 살리기 추진단’에 보고하는 일을 주로 한다. 하천 주변 쓰레기 줍기와 토종 물고기 방류, 학교 주변 산 가꾸기도 한다.

지씨가 처음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쓰고, 옷가지를 꼭 재활용하는 억척 ‘에코맘’ 인 어머니 김소영(44)씨가 “환경봉사가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지씨에게 권유했다. 그래서 인천청소년그린봉사단에 가입해 산과 하천을 누볐다.

지씨는 처음 승기천에 정화활동을 갔을 때 물이 흐르지 않고 썩어 있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평생 환경지킴이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푸름의 새내기처럼 지씨는 처음에는 냄새 나고 더러운 것을 참기 어려웠다. “학생이 무슨 힘으로 환경을 바꾸느냐, 정부가 나서야지. 공부나 해라”며 주변에서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묵묵히 그린봉사단 활동을 계속했고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인천교육감상, 자원봉사대회상을 받았다.

지씨가 ‘환경천사’로 유명해지자 친구들도 ‘우리도 해 보고 싶다’며 봉사 방법을 묻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지씨는 2006년 명신여고생 20명과 푸름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특별활동시간에 환경봉사를 할 수 있도록 버스까지 지원해 줬다. 지난해 10월에는 푸름이 인천광역시장상(단체상)을, 올 1월에는 지씨가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지씨는 고교 1~2학년 때 300여 시간의 환경봉사활동을 했다. 경력과 수상실적을 인정받아 연세대에 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

지씨의 꿈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어서다. 지씨는 “환경 살리기는 한두 해 해서는 이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후배들의 환경활동을 계속 돕겠다”고 말했다.

글=민동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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