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는 미국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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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02면

한국시간으로 토요일 밤 10시30분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단연 오늘의 톱뉴스입니다정상회담이 끝나는 시간은 일요일 새벽입니다. 중앙SUNDAY는 밤 11시 기사를 마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정상회담을 수행취재 중인 청와대 출입기자가 회담 개최 직전까지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했습니다.

정상회담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은 뉴스 자체의 중요성에다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서입니다. 1994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청와대 비서실’이란 기획취재를 맡아 6·29 선언의 배경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6·29는 노태우 전 대통령(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결단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취재 결과 사실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결심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직선제 개헌 선언’을 노 후보의 결단으로 포장했죠.
다음 궁금증은 ‘왜 전두환 대통령이?’였습니다. 그는 그해 5월 19일까지만 해도 계엄령을 선포하려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는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출동 준비 지시까지 해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나의 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의 성격과 당시 상황을 볼 때 그들의 주장을 쉽게 믿기 힘들었습니다. 한참 취재하던 중 일부에서 “미국이 작용했다”는 증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의문을 풀어준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 출간된 제임스 릴리 전 미국 대사의 회고록 『아시아 비망록』이었습니다. 릴리 대사가 5월 19일 청와대를 방문해 “계엄령 선포는 한·미관계를 저해할 수 있다”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더군요.

두 가지를 실감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인지. 그리고 그런 사실이 얼마나 잘 드러나지 않는지.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미국의 영향력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 중앙일보에서 3회에 걸쳐 연재했던 ‘노무현 정부 북핵 외교’ 시리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보면 양국 관계의 확실한 변화가 느껴집니다.

‘21세기 전략동맹’이란 선언은 피부에 와 닿기 힘든 큰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최소한 지난 10년 대한민국 외교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쇠고기 협상 타결은 그 작은 첫 걸음이겠죠. FTA 비준과 PKO 파병 등이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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