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은 장애인 후진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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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한민국은 후진국이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으니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 수준을 보면 명백히 후진국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 인구 1000만 명에 이르는 서울의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지난해 기준 201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장애인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편의시설이 없어서 외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협회가 어제 발표한 서울시내 25개 구청 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장애인· 노인 ·임신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편의시설의 평균 설치율이 56.1%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반쯤 설치돼서는 의미가 없다. 점자 블록이 없는 구간이 중간중간에 생기면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겠는가.

소득 면으로도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의 소득인정액(실제소득+재산의 소득환원액)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비율은 28.1%로 비장애인(7.3%)의 4배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보전할 장애급여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기준 0.1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3~5%에 비하면 30분의 1 수준이다.

희망이 있는 것은 지난 11일 시행된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다.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부당한 차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련법보다 크게 진보했다. 이 법만 제대로 지켜져도 장애인의 생활 불편은 해소될 전망이다.

내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새 정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고 모두가 넉넉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말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정부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장애의 90%는 질병이나 사고 등 후천적인 원인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가 있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