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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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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루디외는 대중미디어 시대, 비판적인 지식인 상의 위기를 경고했다. 1998년 책 『텔레비전에 대하여』에서 ‘텔레페서((telefessor·텔레비전+교수)’라는 말을 선보였다. TV 등에 출연하기를 즐기며, 대중의 구미에 맞는 패스트푸드형 지식을 양산하는 간이 지식인(fast thinker)이라는 뜻이다. ‘인스턴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치 권력을 좇는 이들을 일컬어 ‘폴리티컬 텔레페서(political telefessor)’라고 불렀다.

이 ‘폴리티컬 텔레페서’의 한국적 용어가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 일 것이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교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번 18대 총선 내내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총 25명의 폴리페서가 지역구에 출마해 16명이 낙선했다. 공천 신청자는 100명이 넘었고, 지난 대선 때는 무려 1000여 명의 폴리페서가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렸다는 말도 있다.

대학교수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이나 당선 후에도 신분을 유지해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비판받았다. 소장 교수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한 서울대는 폴리페서의 공직 선거 출마와 관련한 내규 마련에 들어갔다.

폴리페서 는 영어사전에는 없는 한국적 조어다. 그만큼 한국적 정치현상이라는 뜻도 된다. 교수 의 정치활동 자체야 문제가 없지만, 개인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본연의 책무를 도외시하거나 ‘이용’했다면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번 18대 총선은 46%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로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는 깊어지는데 교수 사회 의 정치인 지망은 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국민에게 정치나 정치인은 인기도, 신뢰도 없는데 지식인 사회에서 ‘직업 정치가’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상한가라는 얘기다. 교수를 공직으로 가는 발판으로 여기며 스스로 ‘직업 정치’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정치 과잉’ ‘권력 지향’ 풍토다.

언론학자인 정용준은 한 글에서 ‘일회용 티슈 지식인’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일부 학회가 이론과 정책을 이끌기보다는 후원 단체의 지원 프로그램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학회 장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회와 학자의 공신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학회와 사회의 수요에 맞춰 유행하는 주제만 골라 공부하는 사이 세월은 흐르고 학문적 축적은 남는 것이 없게 된다는, 뼈아픈 내부 고발이다. 이리저리 한국의 지식 사회는 곪고 있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