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살인부른 株價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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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말썽많던 주가조작이 살인사건으로 번졌다.동방페레그린 증권회사의 이형근(李亨根)대리 피살사건은 주가조작이 투자자들의 피해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도 직접 피해를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지난 한햇동안 26조원의 시중자금을 산업자금화해 세계 13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 증권시장의 질은 과연 건전한 것인가.불행하게도 대답은 「아직 아니다」다.지난해 증권감독원은 법인조치 14건을 비롯해 4백97명을 문책,주의 등으로 징계했다.민원건수도 총 4백51건이 접수돼 증권거래에 대한 진정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 돈이 도는 곳에는 범죄가 따르게 마련이라지만 증권시장은공신력있는 금융기관과 1백60만 주주가 거래하는 場이다.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대신 풍문으로 끝나는 거짓정보와 이를 이용한 시세조종.주가조작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다른 금융기관의 경우 주로 고객자금의 횡령으로 끝나지만 주식시장에선 거래의 기준이 되는 주가를 조작하게 되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이른바 「작전」이라는 것은 정보를 모르는 투자자의 돈을 주가조작을 통해 횡취하는데 문제가 있다.이러한 문제는 선진국 증권시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에서 주로 기인한다는 특성 이 있다.
외국 증권시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증권회사 직원이 연루되는 경우가 비교적 적은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증권회사 직원이 공모 내지 주동이 되는 경우가 많다.그렇게 되는 이유는「약정 제일주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증권회사의 수입이 다양한 금융상품의 매매.인수에 바탕을 두어시장의 장세에 영향을 덜 받는 안정된 외국의 증권회사에 비해 증권매매에 따른 약정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증권산업은계속적인 증권매매를 강조하게 된다.
이에따라 사원의 업적평가도 증권매매실적에 따르게 되므로 증권매매회전율이 높아지게 마련이다.시가총액 세계 13위인 우리 증권시장의 매매회전율은 세계 2위 또는 3위에 달하고 있는 것이바로 그 증거다.
따라서 시장내에서는 일임매매가 횡행하고 일부에서는 임의매매로원금자체가 감소하는 깡통계좌가 되었다고 진정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러나 문제는 투자자에게도 있다.증권투자를 모르는 초보자의 경우 증권투자신탁을 이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직원에게 카드.도장과 비밀번호까지 맡겨놓고 매매를 일임해 사고를 자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실명제아래에서도 차명(借名)거래는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어렵고 특히 도명(盜名)거래는 도명당한 본인도 불의의 피해를 보기 쉽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거래명세서를 본인에게 반드시 통보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증권사 임직원이 직접거래를 하지 못하는 관계로 잠재적인범법자로 남아 있지 않게 자기명의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되매입후 일정기간 동일종목거래를 동결하고 거래명세서를 회사에서 보관해 사후감독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그리 고 임직원 선임때 적격성과 신뢰도를 심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또한 증권감독원에 증권범죄에 대한 실질적 수사권을 줘야 한다.물론 이 경우에도 체포와 기소권은 경찰과 검찰에 있어야 할 것이다.증권시장이 개방되면 될수록 이제 불의의 피 해가 국제적으로 확산될 수있으므로 증권사고의 예방과 아울러 철저한 사후감독이 뒷받침돼야한다. 증권시장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거래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자본주의의 꽃인 증권시장이 해충에 시달리지않게 할 책임은 정책당국에 있다.
〈서울大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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