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서핑] 'VJ 특공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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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느리고 지루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은 깨어져야만 한다."

KBS-2 TV에서 4년째 방송 중인 'VJ 특공대'가 내건 구호다. 그 결과 이 프로그램은 빠르고 재미있고 쉬워지는 데는 성공했다. 공항청사나 고속철의 봄맞이 대청소, 제주도산 다금바리 고기잡이와 요리 등을 다룬 12일 방송분에서 보듯이 소재는 한없이 가볍고 성우의 내레이션은 개그에 가깝게 호들갑스러우며 카메라는 정신없이 대상을 스쳐 지나간다. 아침 시간대의 르포물이나 '6시 내고향'같은 프로그램에서 익히 보아온 형식이다. 바로 이 때문에 웃고 즐기는 사이에 슬며시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를 든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왜 굳이 'VJ특공대'가 필요할까, 라는.

VJ는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준말이건만 정작 프로그램에는 '비디오'만 있을 뿐 '저널리즘'은 없다.

소재주의라는 진부한 비난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시청자의 눈요깃거리로 제공된다. 고층건물에 매달리고 고속철 바닥을 기어다니며 걸레질하는 이들의 노동조차 '볼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노동의 이면을 보거나 그들의 애환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VJ들의 카메라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까지만 기능하고, 그 안에 다큐멘터리스트라면 꼭 추구해야 할 진정성이나 철학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다. 이쯤 되면 방송사가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을 거대 채널의 카메라가 닿지 못하는 세상 구석구석에 날카로운 앵글로 렌즈를 들이댈 게릴라 언론인으로 육성하고 활용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값싼 용병' 쯤으로 치부하고 막 부려먹으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VJ라는 직종과 이들을 활용한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생겨난 지 꽤 지났건만 세간에 이름을 알린 스타 VJ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런 의심을 확신에 가깝게 만든다. VJ들을 아마추어로 폄하하고 진입장벽을 높게 치는 지상파 PD들의 텃세와 우월감도 한 이유라고, 어떤 다큐멘터리스트가 탄식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VJ특공대'가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용돈벌이로 전락하는 한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 존재 이유에 흔쾌한 마음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아이템 선정 등에서 VJ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iTV '게릴라 리포트'의 태도가 더 전향적이고 프로그램이 주는 만족도도 높다.

'세계 여성의 날'을 계기로 남녀평등의 현실을 돌아본 지난14일 방송분이 증명하듯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게릴라 리포트'가 몇배나 올바르고 건강하다. 'VJ특공대'는 왜 존경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게릴라 리포트' 속에 있다.

최보은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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