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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봄 … 춘천 김유정 문학촌으로 떠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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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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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3리. 떡시루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에 ‘찔 증(蒸)’자가 붙은 동네. 그 시루에서 음을 따 실레마을이라 불린다. 볕 잘 내려앉는 이 산골이 소설가 김유정(1908∼37)의 태 자리다. 그는 수필 ‘오월의 산골작이’에서 자신의 고향 얘기를 꺼낸 바 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리고 오늘, 실레마을은 동네 전체가 하나의 문학촌이다. 김유정 생가와 문학관이 나란히 들어서 있지만, 하여 그 두 곳을 일러 김유정문학촌이라 부른다지만, 이것만으론 여기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김유정의 숨결은 산기슭과 논두렁마다, 고샅과 고갯마루마다 배어있다. 김유정이 남긴 소설 30편 중에서 12편이 이 마을을 배경으로 쓰여졌으며, 소설 속 등장인물은 실제로 존재했던 동네 주민이었다.

스스로 “김유정에 미쳤다”고 털어놓는 소설가 전상국(67)씨가 실레마을을 김유정문학촌으로 개간한 주인공이다. 사재 털어가며 김유정문학촌장으로 봉사 중인 그의 설명을 듣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거기엔 봄에 가야 한다. 다음주 열리는 문학제 때문이 아니다. 김유정 소설 중에서 열 편이 봄날의 이야기다.  

춘천=손민호 기자

김유정역

경춘선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의 간이역. 전국 기차역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이 붙은 곳이다. 주민 설득하고 관청 들락거린 전상국 촌장의 수고로 2004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역사 안에 김유정 연보와 책이 진열돼 있다. 예서 김유정문학촌 탐방이 시작된다.

김유정 생가

김유정역에서 5분쯤 걸으면 김유정 생가가 보인다. 소담한 초가를 둘러싸고 생강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게 바로 소설 ‘동백꽃’의 동백꽃이다. 소설 말미의 구절을 보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남도의 동백은 붉지만, 여기 동백은 노랗다. 남도 동백의 향은 미미하지만 여기 동백의 향은 코를 찌른다. 생강나무의 꽃이어서다. 민요 ‘아리랑 목동’에 나오는 ‘아주까리 동백꽃’의 그 동백꽃이다. 그러니까 원래 다른 품종이다.

문학관엔 안타깝게도 김유정 유품이 한 점도 없다. 여기에도 일화가 있다. 김유정의 휘문고보 동창인 소설가 안회남이 김유정 타계 직전에 김유정의 물품을 챙긴다. 그리고 월북을 해버린다.

‘봄·봄’의 무대

그냥 솔숲으로 보인다. 하나 유래가 깊은 곳이다. 소설 ‘봄·봄’에 데릴사위가 점순이와 결혼을 안 시켜준다며 장인과 드잡이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모티프가 된 장소다. 어느 밤 김유정은 여기서 장인과 사위가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봄·봄’을 구상한다. 소설에서 장인의 이름은 김봉필이고 별명은 욕필이 영감이다. 실제로 이곳은 김봉필씨의 집터다. 점순이도 실존인물이다. 점순이의 딸이 살아있어 김유정문학제마다 고향을 찾는단다.

금병의숙

실레마을은 금병산 자락이 에워싸고 있다. 금병의숙(金屛義塾)이란 이름이 그 산자락에서 비롯했다. 32년 김유정은 간이학교 금병의숙을 지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마을회관으로 사용되지만 건물 왼편에 김유정이 심은 느티나무와 기념비가 서있다. 금병의숙 근처엔 주막 터도 있다. 소설 ‘솥’에서 들병이와 근식이가 여기서 장래를 약속했다. 김유정도 여기 단골이었다. 명창 박녹주를 짝사랑하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낙향한 김유정은 한때 술에 빠져 살았다. 그때 들병이와 어울려 자주 먹던 안주가 코다리 찌개였단다.

그리고…

실레마을을 다 둘러보려면 얼추 세 시간이 걸린다. 사연이 담긴 곳곳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소설 ‘만무방’에서 노름 터로 나오는 조그만 동굴도 실제로 있고, 김유정이 멱감았다던 팔미천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김유정문학촌을 들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김유정의 혼이 담겨있어서만은 아니다. 김유정의 문학은 오늘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김유정문학촌 탐방은 미리 신청만 하면 아무 때나 가능하다. 문화해설사도 있다. 김유정문학촌(www.kimjoujeong.org), 033-261-4650.

올해 김유정문학촌은 연중 잔치를 벌인다. 큼직한 것만 해도 김유정문학제(4월 25∼27일), 창작극 공연(5월 10일), 동아시아 대표 작가와의 만남(10월 3∼5일) 등이 있다. 임박한 김유정문학제의 주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소설 속 장면을 체험행사로 전환한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 김유정 소설 입체낭독대회 : 김유정 소설의 한 대목을 각자 배역을 맡아 낭송하는 경연대회.

◇ 점순이를 찾습니다 : 김유정 소설 ‘봄·봄’과 ‘동백꽃’의 주인공 점순이를 찾는 대회. 미혼 여성만 참가 가능.

◇ 닭싸움 : ‘동백꽃’에 등장하는 닭싸움 재현. 소설에서처럼 닭에게 고추장을 먹여 싸움을 부추김.

◇ 김유정 문학기행열차 : 27일 서울 청량리역∼김유정역까지 왕복 열차 운행. 김유정문학촌 동행 답사. 참가비 2만원.

◇김유정(1908~37)=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십 대 때 언어 장애에 시달렸고, 이후에도 폐결핵·치질·늑막염 등을 달고 살았다. 판소리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했다가 퇴짜맞은 뒤 낙담해 낙향했다. 고향에서 소설 쓰고 ‘금병의숙’을 지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 ‘봄·봄’ ‘동백꽃’ 등 단편 30편, 수필 12편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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