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의사실수 미리 막을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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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반인들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겠지만 의료현장에선 종종 황당한일이 벌어지곤 한다.예컨대 개복할 환자와 편도선을 떼어내야 할환자가 수술방이 바뀌어 엉뚱한 수술을 받는 경우가 있다.눈이나무릎등 인체에 2개가 있는 곳은 멀쩡한 곳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닫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고,심지어 뇌수술에서도 질환이 있는 반대편 머리카락을 깎아놓은 것을 무심코 절개한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사례마저 있다.
의사의 실수는 외국도 마찬가지여서 동성동명(同性同名)의 뇌출혈 환자와 뇌경색 환자의 약이 바뀌어 상태를 악화시킨다거나 병든 신장을 그대로 두고 건강한 신장을 적출,형사소송이 걸린 경우등의 사례는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
실수는 인간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 오진과 다르게 구분해야 한다.의료진의 세심한 주의와 노력만 있으면 대부분 충분히 막을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수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도 문제다.환자 한사람에게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의료진이 많아지고 현행 의료보험수가가 개개인에게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의료과오의 빈도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의료선진국일수록 이같은 의료진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갖가지 안전장치를 만드는 노력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아차 싶었던 상황을 체험한 의사들이 이를 일일이 일지에 기록해 원내 교육자료로 배포하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실수 계통분석표」를 만들어 어느 곳에 실수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지 위험예지훈련을 하는 병원도 있다.작은 노력이지만 납 득이 가지 않는 지시나 행동에 대해선 지위와 상관없이 지적해주고 이를 의무적으로 재검토하도록 한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큰 사고의 배경에는 29건의 작은 사고와 3백건의 사고에 근접한 사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안전공학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실수를 하는 동물」이지만 조금만 주의하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대구 가스폭발사건이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등에서 보듯 대형사고의 위험성은 점증하고 있다.의료분야에서도 계속 늘고있는 의료분쟁이 의학의 한계에서 비롯되기보다 의사의 주의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현장에는 한국인의 「대충주의」나 「빨리빨리 증후군」이 없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高鍾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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