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근본주의>7.인기잃은 케말리즘 터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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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터키의 이스탄불.메카와 맞먹는 술탄 아흐메트사원.알리 세빔은무섭지 않다고 했다.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치러야할 순네트(할례)를 하루 앞두고 알라께 출정신고를 온 것이다.『애한테 새좀 보라고 하늘을 가리켜요.그새 으앙 울음소리가 터지 고 수술은 끝나지요』.아버지 아자르 세빔(34)이 거든다.하늘의 새를 보며내일 8세의 알리는 이슬람 신민(神民)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으로 갈린 터키.
터키는 그 지리적 조건만큼이나 상반된 얼굴을 갖고있다.터키 국민 6천만명중 98%가 이슬람이란 사실을 아는 외국인이라면 이나라의 서구화에 놀라게 된다.반면 터키를 유럽의 일부로 이해하던 사람은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여인들의 차도르에 의아해진다.이스탄불의 한 서방언론인은 이를 두고 「알라와 아타 튀르크 사이에서 방황하는 터키」라고 표현했다.
이스탄불 시내를 걷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아타 튀르크(터키의 아버지란 뜻)다.1923년 제1차대전으로 패망해 가던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무너뜨리고 터키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대통령을 일컫는 이름이다.공원이나 관공서.식당. 사진관에 이르기까지 그의 동상과 초상화가 없는 곳이 없다.이토록 케말이 국민의 추앙을 받아온 이유는 최근 70년간 터키국민의 의식을 지배해온 기본 이데올로기가 케말리즘이라는데 있다.
케말리즘의 본질은 脫이슬람화를 통한 서구화.1922년 터키는술탄제를 폐지하고 종교와 국사를 분리시킴으로써 세속국가로 탈바꿈했다.동시에 샤리아(이슬람법)가 근대법에 의해 대체되고 그전까지 학교에서 실시되던 종교교육 대신 현대적 서 구교육이 도입됐다.여성의 지위향상에 관심이 많던 케말은 일부다처제와 여성의이슬람복장을 법으로 금지시켰고 1934년에는 유럽에서 두번째로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또한 교육과 취업에도 여성평등이 보장됐다. 터키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 거리를 걷다보면 서구의 한 도시에 서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초현대식 호텔과 네온사인,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쇼핑센터,청바지와 짧은 치마의 여인들,카페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워 문 여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식당이나 가게에서 돼지고기를 팔지않는 것을 빼곤 스톡홀름이나베를린과 다를게 없다.
『춤 잘춰야 시집가요.』이스탄불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결혼피로연에 예고없이 들이닥친 기자에게 성큼 손을 내밀며 신부 외즈칸(27)이 하는 말이다.영어로만 교육하는 이스탄불의명문 중동공대 출신이라는 그녀는 신랑의 친구들과 함 께 록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구석에조용히 서 있어야 하는 전형적인 「이슬람신부」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그러한 그녀도 『아이를 몇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인샬라(알라의 뜻대로)』라고 답했다.
『케말리즘은 이슬람을 몰아내는데 실패했습니다.』터키의 최대 야당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슬람복지당 에르바칸 메즈메틴(68) 당수의 첫마디다.앙카라의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그의 집무실에는 어디에서나 볼수있는 아타 튀르크 초상화 대신 코란이 걸려있다.
에르바칸 당수의 지적대로 터키의 서구화는 일견 피상적이다.이스탄불의 낮12시는 앰뷸런스가 지나간 직후 같다.차들을 길 양편에 세워둔채 택시기사들은 사원으로 기도하러 간다.기도에 앞서이들은 사원입구의 샘 앞에 줄지어 샤리아에 따라 얼굴과 팔다리를 닦는다.터번을 쓰고 카프탄(가운)을 입은 남자들,차도르로 몸을 숨긴 여인들이 대로를 활보한다.샤리아.터번.카프탄.수염,이슬람의 상징으로 케말대통령이 법으로 금지시켰던 것들이다.
94년 지방선거에서 이슬람정당인 복지당의 승리는 터키는 물론서방을 놀라게했다.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복지당은 집권 정도당을 누르고 인기 1위 정당으로 부상하고 있다.이는 이슬람국중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이상적 모델인 터키가 이슬람근본주의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있다.
『터키인들은 본래 이슬람 골수분자다.
이들을 서구화로 「개종」시킨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이스탄불의 한 서방외교관은 말한다.실제로 서구화는 앙카라와 이스탄불등 일부도시 상류층에 국한됐을 뿐이다.도시 빈민층이나 농촌은 오스만시대의 종교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근친결혼이 성행하며 여자는 16세만 되면 부모가 강제로 시집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이슬람복지당은 바로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갖고있다.
『복지당이 정권을 잡으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24조를 개정할 것』이라고 에르바칸 당수는 밝힌다.최근 복지당은 제7채널이라는 텔레비전채널을 만들어 젊은세대를 겨냥한 종교방송에 열을올리고 있다.제7채널 앵커우먼인 세르필 외즐란( 23)은 이슬람복장을 하고 나와 소녀들의 또다른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기자를 만난 그녀는 『터키의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슬람을 심어주는게 나의 소명』이라며 『여성팬들로부터 하루에 편지를 수백통씩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70년간 터키를 철저히 지배해온 케말리즘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 맹렬한 기세로 고개를 드는 배경은 터키사회에 만연한 부패와극심한 빈부차,그리고 현 탄수 칠레르 정권의 실패한 경제정책에있다.연간 1백20%를 넘는 인플레와 세습적으 로 내려오는 부의 대물림,뇌물을 주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터키사회에서 이슬람정당이 내건 사회정의.평등.복지는 참신하면서도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이슬람주의자들이 96년 총선 승리를 장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회교黨 96년총선 승리 장담 이스탄불에서는 노상에서 물과 과일을 파는 어린 소년들을 자주 본다.대부분 맨발인 이들은값을 묻는 기자에게 때가 까맣게 낀 고사리손을 내밀어 손바닥에숫자를 쓰곤 한다.이들에겐 터키 상류층 부모들간에 유행하는 호텔에서 벌이는 생일 파티 같은 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제국으로부터 빼앗은 성소피아사원.아타 튀르크에 의해 폐쇄된 이 사원 정문에서 한무리의 이슬람교도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聖소피아를 재개하라』『헌법 24조 철폐하라』.시위대의 목소리가 뱃고동에 묻히 는 저녁,보스포루스 해안은 아시아로 떠나는 배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붐빈다.갓 잡은 고등어를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와 노상에서 솜사탕같이 돌아가는 양고기 한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사람들.앞치마에 캥거루 같이 찻잔을 차고 소리치는 차 장수들.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선명히 새겨진 터키국기가 뱃전에 펄럭이며 이스탄불의 밤은 깊어만 간다.
[이스탄불=崔聖愛특파원] 崔聖愛전문기자(중앙아시아) 裵明福기자(북아프리카) 李哲浩기자(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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