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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율화된 학교 철저하게 책임 물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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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4·15 학교 자율화 조치는 학교 운영의 다양화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시험대다. 그간 우리 학교는 등·하교 시간 같은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정부가 간섭하는 규제와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니 학교 현장은 학생을 위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려는 자율 능력을 상실했고 획일적인 붕어빵 교육이 양산됐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학교 지도·감독권에서 손을 떼고 모든 권한을 시·도교육감과 학교장에게 넘김에 따라 학교는 자율 운영 시대를 맞게 됐다. 학교·지역 간 경쟁을 통해 학교 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기회다.

문제는 자율화에 걸맞은 학교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학교 자율화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우려가 큰 것도 그래서다. 입시교육 강화와 학교의 학원화, 학생 건강 악화 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자율이 주어졌다고 당장 모든 학교가 잘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수십 년간 규율과 통제에 익숙했던 학교들이기 때문에 초기의 혼란은 학교가 자율을 얻기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교육청과 학교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조기에 학교 자율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선 학교는 학생 입장을 먼저 고민하는 교육을 한다는 자세부터 가져야 한다. 자율 교육의 요체는 학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교육서비스 제공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라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우열반과 0교시·심야보충수업 문제에 합리적 대처가 가능하다고 본다. 전체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가르는 것과 과목별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는 것 중 어떤 게 효율적일지는 학생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10년 넘게 바람직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해온 논산 대건고 사례가 그걸 보여준다. 심야보충수업도 과거의 획일적인 강제방식이어선 곤란하다. 프로그램의 질과 학생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 학년 구분 없이 자기 수준에 맞춰 강좌와 지도교사를 선택하는 부산서여고의 ‘무학년제’ 보충수업이 좋은 예다.

교육청은 정부의 학교 통제권을 넘겨받긴 했지만 또 다른 규제기관이 돼선 안 된다. 학교의 자율 운영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논산 대건고나 부산서여고처럼 이미 우수한 교육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학교를 네트워킹해서 다른 학교가 벤치마킹할 수 있게 하는 게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이다. 중앙정부도 손 놓고 있어서만은 안 된다. 자율 경쟁 속에서 소외되는 농어촌이나 도시빈민지역 학교와 학생들을 어떻게 지원할지도 별도로 고민해야 한다. 교육과정평가원이나 한국교육개발원 같은 국책연구기관을 활용해 우수학교 사례를 전파하고, 학교 운영 컨설팅을 하는 일도 필요하다.

학교 자율화의 취지는 교육의 다양성이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경쟁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학교 교육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제 그 실현 여부는 학교장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자율 교육은 학생의 수요에 맞춘 것이어야지 학교장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이어선 안 된다. 이 과정에서 학교 평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평가가 나쁜 학교는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율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