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美 동아시아外交 비즈니스에 "비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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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워런 크리스토퍼 美국무장관은 최근 베트남戰 미군전사자 유해 네구의 송환기념행사에 참석키 위해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러나 명목상의 방문목적과 달리 그의 심중은 딴데 쏠려 있었다.아마도 노이바이공항~하노이간 고속도로를 달리는 셔틀버스의 펩시콜라 광고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클린턴 美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아시아 신흥시장과의 교역확대에 주력해왔다.얼핏 보기엔 이러한 정책기조가 몹시 흔들리는듯 했다. 비근한 예로 대만총통에 대한 비자발급 허용으로 미국의 대중(對中)외교관계가 급격히 경색됐다.일본과의 무역마찰은 지난수년간 반도체에서 자동차,다시 컬러필름.항공산업으로 분야만 달리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장관의 이번 베트남 방문을 비롯한 근래 미국의 외교수완은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신흥 군소(群小)개도국에는 꽤 잘 먹혀 들어가고 있다.미국정부의 전폭적지원에 힘입어 미국기업의 직.간접투자가 이들 지역에 속속 침투하고 있다. 크리스토퍼장관은 방문기간동안 베트남의 인권(人權)상황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렇게 강경한 어조는 아니었다.미국의 동아시아외교는 특히 비즈니스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이번 베트남 방문에 존 새턱 국무부 인권담당차관보가 빠지고 대신 조앤 스페로 경제담당차관이 동행해 일정을 주도했다.
중국.일본과 동아시아 군소국가들의 경우는 왜 이처럼 다른가.
우선 미국 대다수 유권자들이 이들 국가 사정에 그리 밝지 못하다는게 美행정부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있다.즉「인권탄압국과의 경협불가(經協不可)」라는 미국민의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있다는 것이다.
가령 많은 학생들이 학살된 중국 천안문사태 같은 극적인 사건은 미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져 있다.
반면 동아시아 역시 노동운동 탄압등 인권문제는 중국 못지 않게 심각하지만 좀처럼 이슈화되지 않고 묻혀지기 일쑤다.
더욱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국가들은 미국과 무역.외교분쟁이 터졌을 때 중국이나 일본만큼 강력하게 대들지 못한다는 것도 미국으로선 마음느긋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미국의 인권문제 간섭에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론 미국의 「안보우산」에 안주하려는 희망을 간절히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이들 나라를 원하는 정도보다 이들 나라가 미국을 원하는 정도가 훨씬 강하다.
미국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기가 중국.일본보다 훨씬 수월할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남지나해 나투나섬 인근 가스정 탐사에 美엑손社를 유치하는데 적극적이다.
원유매장량이 막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사군도(南沙群島)해상 유전을 놓고 중국과 장기간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터에 미국기업의 존재가 중국의 공세에 대한 충실한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로버트S.그린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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