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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년재일동포현주소>中.깨지지 않는 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시가(滋賀)縣 IBM 일본지사에 다니는 A모(25.교토출신)씨.재일동포 3세였던 그는 3년전 일본에 귀화했다.그것도 아버지가 민단(民團)某지방본부의 간부를 맡고 있을 때였다.사립 명문인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이공학부를 나온 그가 우리 국적을버린 것은 회사측의 입사조건 때문이었다.『당신은 유능한 이공학도지만 본사에 들어오려면 귀화를 해야 합니다.』그는 아버지와 의논한 끝에 귀화의 길을 택했다.다른 대기업도 어차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삶앞에서 국적을 버려야 하는,아니 국적을 빼앗긴다는 표현이 옳은 현실.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벽은 아직도 강고(强固)하고 높다.49년 『재일한국인 1백만명의 절반은 불법입국으로 범죄분자가 대부분』이라며 연합군사령부에 서한을 보낸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총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지문날인 제도도 철폐됐지만 말이다.
차별풍조는 재일동포중 직업을 가진 사람이 26%에 불과한 것(日 법무성 93년 통계)에서 잘 나타난다.재일동포중 고령자.
미성년자가 상대적으로 많다치더라도 유직자(有職者)비율은 브라질인(73%).미국인(57%)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
『취업때 본명(本名)사용을 거절당하고,국적포기를 강요당하는 것은 민족적 편견에 다름 아닙니다.재일 미국인에게 취직때 일본명 사용을 요구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도쿄(東京)민단 중앙본부의 한 관계자는 『민족적 편견이 거대한 실체로서 자리잡고 있는 한 정치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의 국가목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일상생활에도 깊이 배어있다.이사문제는재일동포들이 부닥치는 난관중 하나다.도쿄신주쿠(新宿)에서 떡집을 하는 金모(42)씨는 가와사키(川崎)市 하마초(濱町)에 한국식품점을 열고자 했을때 일본인 집주인과 계약과 정에서 일본사회의 벽을 절감했다.임대료등 계약조건은 쉽게 풀렸지만 마지막 서명단계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이 틀어졌기 때문이다.심지어본명으로 골프장 회원권 계약을 하려다 거부당한 동포도 있다.이덕웅(李德雄.51.도쿄)씨는 91년 법인명의로 계약을 맺은 이마이치(今市)市의 한 골프장 회원권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려다일본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그는 결국 소송을 걸어 올 3월 승소판결을 받았다.
재일동포 학생들도 설움을 당한다.효고(兵庫)縣 산다(三田)市의 산다고교 李모(16.2년)군이 당한 경우는 지나칠 정도다.
李군은 지난해 8월 민족차별적 내용의 전화폭력을 30차례에 걸쳐 받았다.전화는 『너 조선놈』『본명 쓰고 한국어 쓰려면 본국에 돌아가라』등 악의에 찬 것들이었다.상대방이 폭언할 때마다 전화기에서 다수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고 아버지 이건우(李健雨.43)씨는 전한다.
전화폭력은 매스컴에 보도되고 인권단체 주최의 집회가 열리면서잠잠해졌지만 李군 가족이 받은 충격은 컸다.지난해 6월 14일도쿄 JR중앙선에서 등교중이던 조총련계 여중생이 『조선인은 돌아가라』는 폭언과 함께 한복 치마를 찢기는등 조총련 학생에 대한 폭력이 기승을 부린 것도 차별풍조의 반영이다.
차별적 제도도 엄존한다.국적조항을 두고있는 공직선거법 9조와 지방자치법 11조,공무원 채용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일견해」가 그것이다.재일동포들은 일본국민과 같은 세금을 내면서도 국적조항에 묶여 지방선거의 참정권이 없다.
공무원 문호는 86년부터 전문직에 한해 열려 3백여명이 일하고 있지만 일반직은 국적조항에 걸려 있다.때문에 재일동포중 공무원은 의사.간호사등이 대부분이다.공무원 채용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일견해는 민간기업 취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 고 있다.
오사카(大阪)민단지방본부 김길두(金吉斗.66)조직정비대책위원장은 『통일견해는 각 기업체가 입사시험에서 국적포기를 요구하는근거가 되고 있다』면서 『일본정부 차원의 행정지도가 아쉽다』고말했다. [大阪.京都=吳榮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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