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어물쩍 넘어간 비자금 수사 개혁은 말뿐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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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며칠전 현직 장관이자 집권세력의 실세중 한명인 사람이 4천억원 비자금설을 언론에 흘렸다.
실제로 그 4천억원이 3당 합당의 주역이자 현정권 창출에 기여한 노태우(盧泰愚)前대통령 쪽의 돈일 것이라는 언론의 추측과발설 당사자의「암묵적 동의」는 이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자금의 주인은 盧 前대통령에서 5共의 전두환(全斗煥)前대통령측으로 옮겨가더니 다시 난데없는 카지노자금까지 튀어 나왔다.더욱이 왜 1천억원에서 출발해 4천억원으로 유포되었는지는 신문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수사결과 뿐이었다.
우선은 집권세력이 책임있는 공적(公的)인 정치를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책임질 수 없는 말을 기자들을 통해 흘리고 자기편끼리 만나서 상의를 했다느니 그런 적이 없다느니 둘러대기에 바쁘고,비자금설을 전해 들었다고 밝힌 출처가 기껏 자 신의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아류 정치인들이었다.
나아가 5,6共 세력은 물론 현집권당과의 관계까지 거론되는데도 불구하고 현집권세력은 발설 당사자가 자신들의 실세중 하나임에도 장관직에서 해임시킨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는듯 책임과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거액의 정치자금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서 만들어낸 정치자금도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듯 간주되는 점이다.
검찰에서는 수사 초기에『정치자금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있는가』라고 미리 자탄성의 변명을 늘어놓고,정치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떳떳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4천억원이니 1천억원이니 하는「검은 돈」이 숨어 있을 수 있다면 현재의 금융실명제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는 반증이다.나아가「그런 돈이 정치자금이라면 봐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시각이 있다면 무엇을 위한 개혁이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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