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咸承熙 파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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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전 지방선거때 야당의 한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경합자는 그지역 공천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을 고발했다.다른 경합자의 뇌물을 받고 그를 공천했다며 돈 받은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 의원은 버젓이 말했다.『나는 뇌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정치자금으로 받았을 뿐이다.』 정치자금이라는 말이 무슨 면죄부(免罪符)라도 되는듯한 말투다.그래서 검찰도『정치자금은 수사하기 곤란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최근 전직 대통령의 4천억원 가.차명계좌 사건도 마찬가지다.두 전직 대통령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엄청 난 돈을「통치자금」으로 거둬들이고 쓴 것으로 돼있다.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전두환(全斗煥)前대통령은 모든 정치자금을 직접 거둬들이고 분배했다.3共시절 권력의 부패양상이 너무 만연하고 심각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는 민정당 대부분의 운영경비를 지급했고 거의 모든 선거 경비를 조달했다.87년 대선때서울의 한 구청장은『원도 한도 없이 돈을 써보았다』고 했다.그돈은 모두 청와대에서 제공됐다.그 당시 선거비용은 수조원 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는 부패의 부담을 혼자 짊어지려 했다.그러나 부패는 축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대규모화하는 결과만 빚었다.
노태우(盧泰愚)前대통령은 정당의 경비를 지원하지 않았다.선거경비도 별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그 대신「당에서 알아서 하도록」 맡겼다.그 결과 중앙의 수금 규모는 줄어들었는지 모르지만 수금 경로와 대상은 확대되었다.청와대를 대리하는 몇몇 사람이 설쳤다.결과적으로 6共은 부패의 전면적인 확산을 낳았다.
5,6共이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거둬들인 돈의 규모가 추정대로 수천억원에 달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막대한 숫자일 것이다.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국정수행에 사용했으니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그것이 기업에 어떤 형태의 주름을주고,정치를 얼마나 부패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그들은 그것을 거둬들이기 위해 권력을 필요로 했고 또 그런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계를 위축시켰다.그것이 한국의 정치.
경제적 자율성을 얼마만큼 왜곡시켰 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닿질 않는 듯하다.
설령 그것을 통치자금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그런 용도에만 쓰였는지는 의문이다.전직 대통령의 퇴임후 생활은「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원하는 정도의 것을 넘는 것으로 보인다.그들은 감춰둔 돈이 없다고 펄 펄 뛰고 있지만 그런 자금을 확인했다는 많은 정황증거나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함승희(咸承熙)파일」같은 것이 그것이다.동화은행 秘자금사건을 다뤘던 검사가 그런 계좌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발언을 하고 있고,금융계에서 그 대리인으로 지목 됐던 인사를 사법처리하지 못했던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판이다.
우리는 정부가 서석재(徐錫宰)前총무처장관의 발언파문을 시중에떠다니는 유언비어에 놀아난 일과성 해프닝으로 만들더라도 놀라지않을 것이다.또는 사채시장의 한 작은 사건으로 축소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문민정부도 대통령 선거비용으 로 前정권및 그대리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現정부가 그것을파헤칠 의지와「공신력있는 기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前대통령이 법적 대응을 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前대통령들이 부패의원흉처럼 지목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은 정치자금은 결코 성역이 아니라는 것이다.문민정부가 출범초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벌였던 것은 정치자금으로 인한 부패의 심화에 대한 체험적 반성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본다.때문에 정부가 제2의 개혁 을 시작한다면 이번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도한다. 적어도 정치자금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적 치부(致富)행위나 부패가 정당화되는 일은 더이상 허용돼서는 안될 것이다.「함승희 파일」을 다시 들춰 조사해보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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