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만 한 종양 떼낸 이멜만, 황제 꺾은 비결은 ‘고개 들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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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한국시간) 마스터스 우승자 트레버 이멜만<右>이 지난해 우승자 잭 존슨이 입혀 주는 그린재킷을 입으며 미소 짓고 있다. [오거스타 AP=연합뉴스]

몸에서 골프공만 한 종양을 떼어내고 나서 그는 골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고, 결국 마스터스 챔피언이 됐다.

트레버 이멜만(29·남아공)이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에서 끝난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3오버파 75타를 친 그는 합계 8언더파로 타이거 우즈(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랜드 슬램을 호언장담했던 우즈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에서 꿈이 깨졌다.

지난해 12월 이멜만은 남아공에서 열린 유로피언 투어에서 우승한 후 갈비뼈 부근이 너무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종양을 발견했다. 등을 18㎝가량 째고 횡격막에 있는 종양을 제거했다. 얄궂게도 종양은 딱 골프공만 했다.

종양이 악성인지 아닌지, 인생의 진로를 바꿀 수도 있는 결과를 기다리면서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했다고 한다. 보통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고 했겠지만 그는 “자신이 얼마나 골프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골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몸이 아프기 전의 자신으로 반드시 돌아가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그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6년 디 오픈(브리티시오픈) 기간에 아내의 출산이 예정되자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아내는 “가장 나가고 싶은 대회였으니 꼭 나가라”고 등을 밀었지만 그는 아내 곁에 남았다.

그의 종양은 악성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수술 후 6주 지나서부터 다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나 성적은 별로였다. 올해 가장 좋은 성적은 40위였다. 지난주 열린 대회에서도 그는 컷 탈락했다.

그래서인지 최종 라운드를 2타 차 선두로 출발한 이멜만이 우승하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6타 뒤에 포진한 호랑이 우즈가 우승할 거라고 했다.

이멜만에게도 우군이 있었다. 마스터스 3회 우승자이며 대회에 최다(51번) 참가한 그의 우상 개리 플레이어(남아공)다. 플레이어는 2005년 미국 대 미국-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의 대륙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 주장을 맡아 이멜만을 발탁했다. 당시 아시아 대표인 최경주를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플레이어는 비난을 무릅쓰고 자국 선수를 발탁했다. 이멜만은 이로써 미국 PGA 투어 카드를 얻고 결과적으로 마스터스 참가 자격도 얻었다. 플레이어는 이번 대회 3라운드 후 이멜만에게 “너는 충분히 우승을 할 수 있다”면서 “퍼팅을 하고 나서 몇 초간 고개를 들지 말라”는 조언까지 했다.

도움이 됐다. 이멜만은 7번 홀에서 1m 버디 퍼트를 실패한 것을 제외하곤 만만치 않은 거리의 퍼팅을 모두 성공했다. 특히 우즈가 10m 넘는 버디 퍼팅을 성공시켜 역전 분위기가 흐르던 아멘 코너의 첫 홀(11번 홀) 프린지에서 넣은 3m 파 퍼팅은 그에게 우승의 확신을 심어 주었다.

이후 그는 별 위기 없이 쉽게 우승했다. 이멜만은 1978년 플레이어 이후 30년 만에 남아공 우승자가 됐다. 그의 형 마크는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고 아버지 요한은 남아공 투어 커미셔너를 했다.

우즈는 샷도 그리 좋지 못했고 퍼팅도 좋지 못했다. 그랜드 슬램을 하겠다고 큰소리친 게 부담이 됐는지 “앞으론 경기에 대한 예상을 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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