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학부모들‘주1회 학원 안보내기’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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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놀아야 즐겁게 공부하죠”
애들을 열심히 놀게 하기위해 나선 이상한(?) 엄마들이 있다. 주위에서 우려가 쏟아진다. “과외보낼 시간도 부족한 데 웬 엉뚱한 소리냐. 어떤 시대인데 애들을 놀리냐. 옆집 아이는 일분 일초를 아끼며 공부시키는 데….” 그러나 분당의 ‘샛별마을’단지 ‘제대로 놀자’모임 엄마들은 이런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딱 두 시간. 아이들은 학원 등 방과 후 공부를 잊는다. 무조건 논다. 무엇을 하며 놀지 엄마가 도와준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3시30분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여서 논다. 방학 중에도 모인다.
  이 ‘제놀’모임이 시작된 지 2년이 채 못됐지만 그 효과는 이미 나타났다. 형이 없던 현웅이(10세)는 다정한 형이 생겼고, 항상 컴퓨터에 앉아 있던 원경이는 이제 밖에서 신나게 논 후 집에선 책을 잡게 됐다. 이들 분당 당촌초교 2~5학년 아이들 20명은 형제·자매나 다름없다. 이렇게 이끈 건 분당동 샛별마을 우방아파트 엄마들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같은 초교 학부모들이라 놀이공동체를 만들기가 쉬웠다.
  “마음 바꾸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조그만 결단력만 있다면 아주 쉬워요. 일주일에 두 시간 아이들 놀리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오히려 아이들 성격이나 성적 또한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이민애(36)씨는 한 아파트에 수년간 같이 살면서 이웃들과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사는 게 못내 아쉬웠다. 아이들도 또래들과 왕래가 없기는 마찬가지. 이씨가 어렸을 땐 같은 동네의 언니·오빠들과 열심히 뛰어놀며 자랐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가기가 바쁜 아이들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김영리(43)씨를 만났다.
  김씨에게 “아이들을 같이 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자녀 연령대도 비슷해 곧바로 모였다. 처음엔 체험 학습을 함께 가고, 책을 읽어주는 소모임으로 출발했다. 이웃들의 참여가 점점 늘었다.
  그러다 2006년 5월 여섯 가족이 합류하자 ‘제대로 놀자’로 발전했다. 현재는 13가구 아이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놀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더 이상 모임은 키우지 않기로 했다.
  “엄마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우선돼야 합니다.” 이씨가 밝히는 ‘제놀’의 대원칙이다. 아이들끼리만 놀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놀이를 이끌어 간다. 돌아가면서 반드시 엄마 3명 정도가 아이들과 함께한다. 한달 한번 꼴로 순번이 돌아온다. 이 때문에 아쉽지만 맞벌이 엄마는 참가할 수 없었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놀라고 했더니 집에서 게임기를 가져오거나 우두커니 그냥 서있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엄마들이 나서서 전래놀이를 재현했어요.” 엄마들 덕분에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체험하고 있다.
  ‘땅따먹기’ ‘사방치기’ 등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전래놀이다. 엄마들은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자평했다.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든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켜주는 것은 ‘제놀’의 효과 중 일부에 불과하다. “평소에 아이가 욕을 많이 해 걱정했었어요.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고 욕을 하던 아이였거든요. 그러던 아이가 이 모임에 참여하고부터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남을 배려하고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된 거죠.” 한 엄마가 놀라운 변화를 자랑했다.
  요즘엔 아빠들이 기웃거린다. “아빠가 얼마나 놀이에 끼고 싶어 하는지 몰라요. 애들 놀았던 얘기 들려주면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2학년,5학년 두 딸과 참여하는 윤성혜(37)씨는 요즘 남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에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놀이공간이 없어 아이들과 함께 쩔쩔맬 때가 있다. 일정한 모임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매번 놀이터를 옮겨 다니며 논다. 대부분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지만 학교 행사가 있는 날엔 비워 줘야 한다. 그래도 비 오는 날엔 분당동사무소 배려로 지하 체육실을 이용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배구공·배드민턴 용품 등 놀이 물품 보관 공간이 없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엄마들끼리 놀이 스케줄을 짤 회의 공간도 없다.
  “주위에 유휴 공간이 있지만 사용하는 데 제약이 많네요. 우리가 깨끗이 청소하고 예쁘게 꾸며, 잘 관리할 수 있는 데 사용 허가 얻기가 힘들어요.”
이씨는 지난해부터 관련 지자체 부서에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껏 어떤 답변도 얻지 못 했다. 한 소공원의 비품 창고인 그 곳은 관리가 제대로 안돼, 청소년들 탈선 장소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아저씨 다방구 할 줄 아세요?


  “아저씨 다방구 할 줄 아세요? 우리는 그거 되게 잘하는데…. 얼마나 재미있다고요.” ‘제대로 놀자’에 참여한지 1년이 넘은 재욱(11)이와 민재(11)는 외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다방구’라니.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친근한 단어인가.
  까마득한 과거에 했던, 그러나 어떻게 하는지도 가물가물한 그런 놀이를 지금의 아이들 입에서 들었다. “지난 주말에 아빠랑 여기서 배운 구슬치기를 했는데 아빠에게 다 뺏겨버렸어요. 실력을 키워서 아빠 구슬 다 따버릴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얘기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실제로 아이들 모습은 ‘행복’ 그 자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놀자’는 자신들만의 사회다.
  여기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규칙이 없다. 그저 이번 ‘판’에 지면 다음 ‘판’에 이기면 된다. 순서를 기다리며 우리 편의 잘하는 모습에 환호하고 상대편이 잘하면 아쉬움의 한숨이 이어지고, 그러나 게임은 계속되고 누구하나 토라지는 법이 없다. 왁자지껄 떠들다 가면 공부도 더 잘된다. “이 모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컴퓨터 게임보다 백배는 재미있어요” 이제 모임에 참여한지 2달 된 문영(11)이의 말이다. 일주일에 비록 두 시간이지만, 아이들에게 그 시간만큼은 그 무엇에도 빼앗기기 싫은 보물이다. 문의 http://cafe.daum.net/mamastar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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