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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1년] ‘총격 참사’ 버지니아공대는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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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참사 1주년을 앞둔 12일(현지시간) 신입생들이 가족들과 함께 대운동장 ‘드릴필드’에 세워진 추모석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박진걸 기자]

2007년 4월 16일. 벚꽃이 만개한 미국 버지니아주의 남서부 작은 도시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 공대에선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대학 영문과 4학년생이었던 한국계 조승희가 강의실에 난입, 학생과 교수들에게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해 32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참사 1주년을 앞두고 12일 찾아간 버지니아 공대는 여전히 벚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토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학교를 찾은 신입생들의 풋풋하고 밝은 모습에선 총격사건의 어두운 과거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참사를 말해주는 건 대운동장에 세워진 공식 추모비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32개의 추모석이었다.

“리마, 네가 무척 보고 싶어. 너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지. 사랑해.”

노트를 찢어 남겨놓은 글이 한 추모석 앞에 놓여 있었다. 다른 추모석 앞에는 희생자의 가족이나 친구 등이 남긴 생일축하 편지와 사진, 조개껍데기 등이 놓여 있었다. 학교를 찾은 인근 주민들이나 아이들도 추모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묵념을 했다.

오후 3시를 넘기자 추모비 부근이 시끄러워졌다. 검은 가죽재킷에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추모비 앞에 섰다. 이 대학 졸업생이자 오토바이 동호회원들이 희생자 추모 장학기금을 전달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 모임의 살자노는 “사건 이후 실의에 빠진 모교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장학기금을 모금하게 됐다”고 말했다.

총기참사 이후 지난해 8월까지 폐쇄됐던 노리스홀 건물은 현재 이 대학 기계공학과 과사무실 및 교수·대학원생 연구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했던 노리스홀 내 강의실은 사용되지 않고 있고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강의실은 당시 교수와 학생 30명이 희생됐고 범인 조승희도 경찰과 대치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대학 측은 총기참사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이곳을 ‘평화 및 폭력방지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버지니아 공대엔 500여 명의 한국계 학생이 있다. 재미동포인 김세연(생물학과 4학년)씨는 “총격사건 때문에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며 “비록 범인이 한국인이었지만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내가 피해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대학원생도 “많이 걱정해주신 것과 달리 한국 학생들이 지난 1년간 위협이나 불이익을 겪지 않았다. 학교에서 많이 배려해줬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노리스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기계역학과 학과장 이슈와르 푸리 교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총소리와 비명소리, 창밖으로 뛰어내리던 학생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어디에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범인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사건 때문에 한인 학생이 위협을 받거나 하면 인종차별 범죄로 다뤄 엄중히 대처하겠다는 것이 학교 방침”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참사 1주년이 되는 16일을 ‘추모 기념일’로 정해 하루 동안 휴강하고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열 계획이다.

한편 조승희의 부모 등 가족들은 사실상 세상과 관계를 끊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 사건 이후 버지니아 센터빌에 있는 조씨의 집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블라인드가 항상 내려져 있고 창문에는 종이까지 붙여져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씨 측 변호사는 “그들은 계속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지사=박진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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