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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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육신의 숲 속에 이런 쾌감이 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놀라웁기만 했다.
미스터 조의 손끝에 황홀한 신천지가 구름무늬 비단처럼 굽이굽이 펼쳐졌다.고대 벽화에서 본 비천상(飛天像)이 떠올랐다.아리영은 알몸으로 하늘을 나는 여신이다.
그러나 막상 두 몸이 하나가 되었을 때는 고통스러웠다.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미스터 조 방에 들러 쾌감과 고통을 함께느꼈다. 고통은 참을만했다.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육신 안에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아리영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그리고 쾌락의 비중이 훨씬 더 컸다.아리영은 표피적(表皮的) 쾌락에 급속히 길들여져 갔다.
밀회는 오래 가지 않았다.
부쩍 모양을 내기 시작하고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곤 하는 딸의이상한 기미를 어머니가 눈치챈 것이다.파하는 시간에 맞춰 어머니가 학교로 데리러 왔다.어머니가 오지 못할 땐 운전기사 아저씨가 왔다.
맘씨 좋은 인도인 아저씨에게 사정하여 골동품 가게에 들렀다.
사갈 물건이 있다고 핑계댄 것이다.
미스터 조는 없었다.며칠째 지방 출장중이라며 상점 주인이 손을 저었다.도착 즉시 집에 와달라는 쪽지를 써놓고 왔다.아버지어머니에게 말씀드려 두 사람 사이를 허락받으리라 했다.
미스터 조로부터는 연락이 오지 않은 채 사태가 벌어졌다.임신한 것이다.
심하게 입덧하는 아리영을 체한 줄로 알았던 어머니는 사실의 심각성을 깨닫고 새하얗게 질려 쓰러졌다.원래 저혈압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였다.
이튿날 아리영은 곧바로 홍콩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그리고는곧 어머니와 함께 귀국하여 서울 학교로 전학했다.
미칠듯이 그가 보고 싶었다.골동품상 앞으로 몇 차례 편지를 띄웠으나 「수취인 주거 불명」으로 되돌아왔다.그 되돌아온 편지가 어머니에게 들켜 한바탕 또 난리판이 났었다.
미스터 조가 인도의 한 대학 연구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인도사상에 관한 그의 글이 실린 국내 신문을 통해서였다.
「철학박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아리영이 막 결혼한 다음이었다. 인생의 톱니바퀴가 크게 어긋났음을 아리영은 뼈아프게 실감했다.
남편에게 살뜰한 정을 품지 못한 데엔 분명히 미스터 조의 「자국」 탓도 있었다.
남편은 성실했지만 미숙했다.미숙하기는 아리영도 매한가지였으나미스터 조의 손끝에서 피어난 황홀한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어쩌면 표피적인 쾌락에 길들여졌을지도 모를 아리영을 남편은 내내이해하지 못했다.
가슴을 뜨겁게 스쳐간 나선생의 손길이 아리영의 먼 기억을 당겨 피어 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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