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bal Eye] 월가의 ‘외양간 고치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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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34면

미국의 금융규제 장치는 위기의 산물이다. 1907년 뉴욕 굴지의 은행들이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공황은 ‘마지막 돈줄 제공자’로 연방준비은행(Fed)의 창설을 이끌었다. 1929년 대공황과 그에 따른 은행 파산 사태는 증권관리위원회(SEC)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탄생시켰고, 법(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은행을 월스트리트와 분리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이번 금융 신용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대·최악의 것으로 꼽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규제 강화 방안들이 난무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은행들의 결손상각이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 강화는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시장과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강화하고 소액투자자와 고객 등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시장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경우 금융공학을 통한 금융기법과 제품의 혁신(innovation)을 위축시키고 이것이 미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금융 중심이 뉴욕에서 런던으로 옮겨갈 위험성도 다분하다고 한다. 혁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묘수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말만큼 쉽지 않은 데 미국 당국의 고민이 있다.

시장에서 혁신은 항상 규제를 앞서 간다. 이번 위기 역시 주택담보대출채권의 증권화와 파생상품의 다양화 등 금융기법 혁신에서 촉발됐다. 증권화는 두 가지 결정적인 폐단을 낳았다. 부실채권을 우량채권과 한데 섞어 위험부담을 위장시켰고 이것이 투자자들도 모르게 전가되면서 방만한 대출을 부추겼다. 은행들은 이 증권화 덕분에 자기자본 충족요건을 비껴가면서 장부 바깥의 거래를 몇 십 배 규모로 키울 수가 있었다.

폐단 때문에 혁신을 제약한다면 이는 비(非)미국적이다. 그렇다고 규제가 혁신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도 없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의 개혁 청사진 ‘합리적 규제구조’의 키워드는 단순성과 투명성이 핵심이다. 금융상품 및 거래의 복잡성과 비공개성의 베일을 걷어내 투자자들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사는지를, 감독당국은 정확히 무엇을 규제하는지를 알게 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규칙들은 금융기관이나 회사들만 관리할 뿐 그 고객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다. 일반 소비재의 경우 소비제품안전위원회가 있듯이 금융상품안전위원회를 설치 운용해 불량품을 퇴출시키자는 주장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및 규제 권한을 SEC에서 Fed로 넘기려는 구상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SEC는 금융기관의 유동성이나 지불능력을 감시 규제할 능력이 없고, 개별 투자자 보호를 넘어 시장 전체의 광범한 이해를 지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 돈줄’을 쥔 Fed에 규제권한을 강화해 주는 것이 논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투자은행들의 거래내역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위험부담이 높은 거래행위에 자기자본요건 강화와 함께 높은 수수료를 물리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인수합병을 통한 금융회사의 대형화· 공룡화가 내일의 비즈니스 모델로 계속 유효할지에 관한 문제 제기도 고개를 든다. 특히 스위스 최대은행 UBS와 미국 씨티그룹의 거액손실을 계기로 ‘대마불사’ 신화에 경종이 안팎에서 울리고 있다. 월가의 규제 강화가 금융 세계화를 타고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규제를 과감히 풀고, 인수합병과 금융회사 대형화를 통해 서둘러 금융산업 기반을 다지려는 한국에는 일대 역풍(逆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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