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터블·미니밴 등 매년 30종 신차 알뜰·깜찍 ‘엔진’으로 고유가 넘어 질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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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16면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국내 경차 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800㏄ 미만이었던 경차 배기량 기준이 올해부터 1000㏄ 미만으로 확대돼 기아자동차 모닝이 경차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모닝은 지난달에만 9421대 팔렸다. 이는 지난해 3월보다 375% 급증한 것이다.

‘경차 왕국’ 일본 현지 리포트

모닝의 1분기 판매 실적은 2만6000대로 집계됐다. 부동의 1위 현대자동차 쏘나타(3만6400대)에 이어 내수 2위를 차지했다. 경차가 판매 순위 ‘톱3’에 든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10년 만이다. 모닝은 올해 계약 대수에선 1위에 올랐지만 주문이 밀려 계약 물량 소화가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판매 1위를 쏘나타에 내줬다. GM대우자동차의 경차 마티즈도 3월 판매 실적이 2월보다 19.1% 늘어난 5167대를 기록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고유가 시대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이 같은 경차의 인기몰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경차가 반짝 인기를 누렸던 외환위기 직후 2~3년에 이어 ‘제2 전성기’를 맞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국내 경차 시장은 아직 더 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 경차 시장 규모는 ‘경차 왕국’ 일본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2000년대 들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선에 불과했다. 올해 모닝 특수로 급신장한다 해도 7%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은 경차가 자동차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스즈키·다이하쓰·미쓰비시 등 경차 업계는 연간 190만∼200만 대를 팔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 등록돼 있는 승용차 7600만 대 중 2500만 대가 경차였다. 일본에서 돌아다니는 승용차 셋 중 한 대는 경차라는 얘기다.

스즈키의 고지마 요이치(小島洋一) 홍보과장은 “90년대 중반 세컨드카 바람이 불면서 중소 도시나 지방을 중심으로 경차가 세컨드카로 자리 잡았다”며 “인구 10만 명 미만의 소도시에선 과반수 가구가 경차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상대적으로 주차비가 비싸 1가구 1차량이 기본인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는 경차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지난해 기준으로 도쿄의 경우 100가구당 10.7대의 경차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돼 전국 평균(47.9대)에 크게 못 미쳤다.

‘경차 천국’ 일본
한국은 경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배기량 기준을 올해 1000㏄로 높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차 배기량 기준은 아직도 660㏄다. 이 기준은 30년째 유지되고 있다. 경차가 추구하는 경제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일본 경차는 가솔린 1L로 평균 20㎞(자동변속기 기준)를 달릴 수 있다.

그런데도 경차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경차 안전도가 소형차와 동일한 수준인 것으로 인정받은 데다 터보 엔진이나 직분사 엔진 등 출력을 높이는 신기술이 지속적으로 개발된 덕분이다. 다이하쓰 홍보실 시미즈 소조(淸水正浩) 담당은 “98년 시속 50㎞로 충돌하는 안전 시험에서 경차가 소형차와 똑같은 기준 점수를 받은 뒤 경차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경차 업체들이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해 다양한 모델을 출시한 것도 경차 판매 확대의 한 요인이다. 일본에선 새로운 경차가 매년 30종가량 나온다. 업체마다 50종류가 넘는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해치백·왜건·컨버터블·미니밴·지프·경트럭 등 형태도 다양하다. 넉넉한 적재공간과 귀여운 디자인으로 5년째 경차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스즈키의 ‘왜건 R’을 비롯해 ▶미쓰비시의 해치백 ‘아이(i)’ ▶다이하쓰의 컨버터블 ‘코펜’ ▶미쓰비시의 지프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파제로 미니’ 등이 눈길을 끄는 모델이다.

최근에는 호화 옵션을 장착한 150만 엔(약 1500만원)대 프리미엄 경차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에어컨을 작동하면 설정한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해 주는 전자동 에어컨, 무선 키를 갖고 차에 다가가면 저절로 문이 열리는 ‘키리스(Keyless) 시스템’ 등 고급차에서 볼 수 있었던 옵션을 경차에도 적용하고 있다. ‘경차는 작고 불편하다’는 고정 관념을 깬 모델도 나왔다. 스즈키의 파렛토는 실내 크기가 웬만한 소형차보다 큰 미니밴 경차다. 차 높이를 키운 데다 전동식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아이들이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이처럼 경차가 고급화되면서 일본에선 중형차를 팔고 경차를 구입하는 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도쿄 맨션에 사는 야마자키 모토시(山崎元司·42)도 지난달 중형차인 크라운(배기량 2400㏄)을 팔고 경차를 구입했다. 그는 “경차로 바꾸니 기름값·세금·보험료 등 차량 유지비가 월 3만 엔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구희철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과장은 “국내 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선 각종 혜택을 늘리는 것과 함께 자동차 업체들이 일본처럼 다양한 모델을 개발해 시장을 키워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혜택이 적어서가 아니라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얘기다. 실제 일본의 경차 혜택은 한국보다 작은 편이다. 한국은 경차에 대해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취득세·등록세 납부와 도시철도채권 구입을 면제해 준다. 세금 종류가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일본은 경차의 세금 감면 폭이 소형차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 또 한국은 고속도로 및 공영주차장 이용료, 혼잡통행료를 50% 할인해 주는 반면 일본은 고속도로 통행료만 20%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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