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을 멈출 수 없는 당신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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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12면

『아케이드 프로젝트』발터 베냐민 지음, 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몰링의 유혹』파코 언더힐 지음, 송희령·김민주 옮김, 미래의창 펴냄.『쇼핑의 유혹』토머스 하인 지음, 김종식 옮김, 세종서적 펴냄.『소비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니콜라 게겐 지음, 고경란 옮김, 지형 펴냄.『쇼퍼홀릭 1~5』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외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20세기 후반에 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소비로 규정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명품’ ‘럭셔리’ ‘지름신’으로 형용되기도 하는 오늘날 대중소비문화의 뿌리는 깊지 않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 처음 생긴 회랑식 상가, 즉 아케이드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지층을 탐사한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에서 발터 베냐민은 이렇게 말한다.

“군중 속에서 도시는 때로는 풍경이, 때로는 거실이 된다. 곧 이 두 가지는 백화점의 요소가 되며, 백화점은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한다. 백화점은 산책자가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을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인파 속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 파리의 풍경이 새롭게, 그러면서도 진부하게 재현된다. 그 새로운 측면이란 이른바 몰링, 즉 소비와 엔터테인먼트와 문화를 거대한 하나의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파코 언더힐은 『몰링의 유혹』(미래의 창)에서 어디다 주차하고, 어디서 밥 먹고,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몰링의 유혹 요소로 들고 있다.

몰 이용객의 유형도 다양해 생쥐처럼 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몰랫(mall rat), 쇼핑은 물론이고 영화관·카페·이벤트를 모두 이용하는 몰리(mallie), 운동 삼아 몰을 산책하는 몰 워커(mall walker)까지 있다.

“고객의 자유로운 방문과 활동을 인정해 구매로 이어지게 해야 하며, 이러한 것들을 거부하면 당장의 고객은 잡을지언정 더 이상의 잠재고객을 유치할 수 없다”는 게 몰 경영자를 위한 저자의 충고다. 어느 나라에 가건 몰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한 시대, 특정 국가나 지역 생활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니, 해외여행 떠날 때도 참고할 만하다.

쇼핑과 소비에 나서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쇼핑과 소비에 관한 문화사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는 토머스 하인의 『쇼핑의 유혹』(세종서적)을 읽어 보면 그것은 힘의 문제에 해당한다.

쇼핑하는 사람은 쇼핑 그 자체에서 자신의 권위와 가치와 힘을 확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힘겹게 겨우 걷는 노인이 오래 걸어야 하는 대형 쇼핑몰을 방문하는 까닭은 ‘그냥 외출해 간단한 쇼핑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쇼핑몰에서 물건을 골라 구매한다는 사실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내 스스로 상품을 선택하고 값을 치르고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자율성의 느낌을 누리려 한다는 점에서 쇼핑은 쇼핑 그 이상의 행위가 된다. 종족보존만을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소비만을 목적으로 쇼핑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소비는 자아실현과 자율성의 확인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 행동과 인지에 관한 흥미로운 책 『소비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니콜라 게겐 지음, 지형 펴냄)를 읽어 보면 판매원의 미소를 마주하거나 아주 짧은 시선 접촉만으로도 소비자는 매장에 더 오래 머무르며 더 많은 금액을 소비한다. 장소와 제품에 적합하다면 음악이 나올 때 소비자는 그 장소에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품격과 섬세한 이미지로 연결되어 더 고급스럽고 비싼 제품을 선택하게 만든다.

수많은 광고 전단지, 귀찮은 스팸 메시지가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지만 같은 정보를 단순히 여러 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단순노출 효과라 하는데, 최근에는 교묘하게 상품 관련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과 인내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더 자주 쓰인다.

쇼퍼홀릭(shopaholic), 즉 물건을 습관적으로 사면서 쾌감을 느끼는 쇼핑 중독자의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소피 킨셀라의 『쇼퍼홀릭』(황금부엉이) 시리즈의 주인공 레베카를 반면교사로 삼을까, 선망의 대상으로 삼을까, 혀를 차며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까. 카드 빚을 지고도 쇼핑을 멈출 수 없는 레베카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까지는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닐지.


출판평론가·도서평론가·번역가·저술가 등 다채로운 직함을 가진 표정훈씨는『탐서주의자의 책』『나의 천년』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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