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세월따라>태안반도 염전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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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변마다 원색 물결이 출렁이고 있는 서해안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행락객들로 북적거린다.거침없이 내리쬐는 태양과 싱그러운 해풍에 몸을 내던진 해변가에는 젊음의 향연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70년대 중반 가난을 씻기 위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무렵부터 몽산포.연포.만리포.청포대 해수욕장이 한꺼번에 몰려있는 태안반도에 피서객들이 몰려들었다.그후 이 일대 해수욕장은 우리나라 레저시대의 서막을 열며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강릉 경포대와 함께「해변문화」의 트로이카를 이뤄왔다.80년대 들어 포장길이 열리기전까지 이 일대 해수욕장은 조용한 휴양지였다.해변에송림이 많아 캠핑하기에 좋고 고운 모래밭은 넓으며 수온은 따뜻해 해수욕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았다.요 즘도 서해안으로 달려가는 행락객들은 언제나 홍성을 지나 태안쪽으로 접어들면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해풍냄새에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태양과 낭만과 모래사장이 있는 각종 해수욕장의 표지판이 태안읍에 들어서면서 어지럽게 행락객들을 유혹하고 있다.오른쪽으로 가면 만리포와 학암포,왼쪽으로 가면 몽산포와 청포대.
바로 여기서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잠깐 들러 폭염과 싸우는 염전의 뜨거운 현장도 들러볼 만하다.
낭만의 해변가를 끼고 땡볕에 땀흘리는 염전 사람들의「고투」에는 고개마저 숙여진다.이제 영세 염전은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단염전으로인해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태안을 지나 몽산포쪽으로 가다보면 해안쪽에 가지런히 줄지어선 염전지대 가 나온다.
태안읍남산리 바닷가에 위치한 평화염전은 전국에서 최상품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염전.『소금가격이 좋았던 60년대 초반에는 소금 4부대면 일꾼 한사람 월급이 너끈히빠졌지.이젠 좋은 시절 다갔어.지금은 2백부대는 팔아야 겨우 한사람 월급을 댈 수 있을 뿐이야.』 지난달 28일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더미같은 소금을 일구던 관리인 남창희(南昌熙.69)씨는『염전은 이제 적자산업』이라며『최근 염전들이 공단으로 바뀌는곳이 대폭 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해수를 끌어들여열로 만드는 소금이 무 슨 제맛이 나겠어.햇볕과 바람으로 만든천일염이 진짜지.』 南씨는 천일염을 먹으면 잔병치레 한번 없다고 입이 마르도록 천일염 예찬론을 늘어놨다.그러나 시대가 변하면 염전도 변하는 모양.염전의 재래식 모습은 하나 둘 바뀌고 왕년에 노다지를 캐던 염전의 미래상은 사라진지 오래다.가난에 찌들고 하루하루가 빡빡한 탓인지 염전사람들의 어깨가 자꾸만 처지는 것같아 애처로워 보였다.
넓이가 10만평인 평화염전에서 하루에 채염하는 천일염은 50㎏들이 80부대.하루 생산능력이 1백20부대지만 일꾼이 달려 목표량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천일염을 거두는데는 햇빛이 많은 여름에는 열흘정도이고 봄.가을에는 보름 걸린다.이렇게해 거둔 천일염 50㎏들이 한부대가 5천5백원.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썰물처럼 빠져 나간 어촌에서 그나마 노인들만이 염전을 지키며 천일염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낭만이 깃든 한여름의 바닷가에 스산하게 남아있는 폐전은 한국 염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외지 여행객들을 반겨주는 코흘리개 어린이들과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아낙네들의 뒷모습이 자가용을 타고 바닷가로 향하는 행락객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한때 염전은 부의 상징이었어요.딱이 이렇다할 공장이 없을 때 염전은 이 동네에 엄청난 부 를 가져다 주었지요.소금부자가 만석꾼보다 좋은 때가 있었어요.』오후 늦게 새참을 먹던한 염전꾼은『옛날이 좋았다』며 염전지대가 관광거리가 되고 있는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이곳 염전지대에는 천일염 원료가 되는 바닷물을 저장해 두는 해수 저수지가 있다.1만여평 넓이의 평화염전 해수 저수지 한가운데에는 인공섬이 있어 망둥어와 농어새끼를 낚을 수도 있다.한국의 「맛」을 지키기 위해 뙤약볕에서 고독과 싸우는 염전꾼들의 모습이 바로 인근 해수욕장에서 낭만을 구가 하는 행락객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한여름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泰安=高昌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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