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고장내는 정밀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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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식 경유 차량을 운전하는 A씨는 지난달 배기가스 정밀검사 때 엔진 헤드가 망가지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새로 만든 부하검사 기준에 따라 5,000RPM이 넘도록 엑셀레이터를 밟아댔기 때문이다.

A씨는 "고속도로 내리막에서도 최고 속도가 시속 160km에 불과한 차를 시속 200km가 넘을 정도의 RPM으로 밟아대는 것은 70세 노인에게 20대 청년의 체력 기준을 갖고 측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며 "차가 오래됐고 그 정도 검사에 못견딜 정도라면 어차피 폐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차가 만들어질 때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을 넘겨 새차라도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는 기준을 갖고 검사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B씨는 97식 경유 터보차량을 검사받을 때 검사원이 시동을 걸자 마자 가속 페달을 갑자기 밟는 바람에 터보차저가 고장나 3시간의 실랑이 끝에 보상수리 받기로 합의했다.

96년식 승용차를 운행하는 C씨는 3만3,000원을 내고 받은 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후 20여만원어치 수리가 필요하며 그래도 통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말에 12만원을 주고 검사 대행을 의뢰했다. C씨는 "차 상태가 좋아 2 ̄3년 더 탈 생각이었는데 일년에 한번씩 이렇게 돈이 들어간다면 차라리 폐차하는 것이 싸게 먹히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부터 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 대상 차량이 크게 늘면서 검사 과정에서 차량이 손상되는 등의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검사 기준이 비현실적인데다 대행업체를 통해 편법으로 검사를 통과해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모든 차량이 받고 있는 자동차 정기검사와 별도로 실시하는 배출가스 정밀검사는 대도시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2002년 서울지역을 시작으로 인천, 경기도 일부지역(대기환경규제지역)에서 도입됐다. 운행자동차의 배출가스를 현행 정지상태에서 검사하는 무부하 검사방법 대신 도로주행조건이 일부 반영된 주행 상태에서 배출가스를 측정하는 부하검사방법으로 측정한다. 처음 시행할 때는 차령 13년 이상을 대상으로 했으나 올들어 차령 7년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대상차량이 지난해 34만대에서 올해부터는 133만대로 크게 늘었다.

문제는 차량 제작시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 연합(http://www.carten.or.kr)에 따르면 휘발유, LPG차량은 92년부터, 경유자동차는 98년부터 대기환경보존법에 따라 현재 검사기준과 비슷한 CVS-75모드(일명 LA-4모드)를 기준으로 제작하고 있다. 따라서 91년 이전 만들어진 휘발유 차량이나 97년 이전 만들어진 경유 차량은 현재 기준으로는 검사에 불합격될 가능성이 높고 심할 경우 차량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 특히 경유 차량은 최대출력 상태에서 부하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는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현재 10년타기연합 홈페이지에는 A씨처럼 엔진이 손상돼는 등의 크고 작은 피해사례가 100여건 올라왔다. 그러나 환경부나 자동차검사소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성산자동차 검사소 관계자는 "검사는 '가속 페달을 최대로 밟아 엔진최고회전수에 도달시킨 후'라는 환경부의 지침에 따라 이뤄질 뿐"이라며 "몇분 동안에 불과한 검사 과정 때문에 엔진이 망가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도 "미국과 같은 국제적인 자동차의 검사 규정을 도입한 것"이라며 "검사 현장에는 안가봐서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RPM을 올릴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속 페달을 최대로 밟아'라는 규정이 어느 한도까지 얼마동안 밟으라는 것인지 모호해 언제든지 차량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경부는 오히려 11일부터 출고후 7년이 넘은 비사업용 승용차 소유자가 2년 주기인 자동차 정밀검사를 제때 받지 않으면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또 과태료가 부과된 이후 90일이 지나도 과태료를 내지 않고 정밀검사도 이행하지 않으면 약식기소돼 최고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는 처벌규정이 없었다.

이와 함께 오는 2006년부터는 승용차 가운데 적용대상이 4년 이상된 차량으로 확대된다. 승용차를 제외한 비사업용 기타차량은 5년이 넘은 경우 1년마다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며 2006년부터는 3년이 경과된 차량부터 적용된다. 사업용 차량의 경우 올해부터 승용차는 2년이 지나면 1년마다 검사를 받아야 하며 기타 차량은 내년말부터 적용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많은 차주들은 10 ̄15만원을 주고 검사 대행업체를 이용한다. 대행업체는 보통 엔진출력을 낮춰 배기가스 검사를 통과한 뒤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편법을 사용한다. 합격률은 높지만 오래된 차량에 대한 철저한 정비를 통해 대기오염을 줄이겠다는 입법 취지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다.

10년타기연합 강동윤 기획실장은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환경부의 의도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배출가스 관련법 제정 이전에 무부하 검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차량에도 불합리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환경부는 조속한 시일내에 오래된 자동차 소유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검사방법을 제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배기가스 정밀검사 도입 과정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해 당초 10년 이상이던 대상 승용차 기준을 13년 이상으로 완화했는데 올해부터 갑자기 대상 차량을 7년 이상으로 늘렸다"며 정부의 무신경한 대응을 질타했다.

김창우 기자 <kcwsss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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