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이민시대>3.사업도 쉽지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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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여행하듯 현지답사를 다녀온 후 이민길에 오르는 사람들은 『한1년쯤 영어공부나 하면서 현지사정을 알아보면 뭔가 일거리를 찾을 수 있겠지』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출발한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해 집 구하고 차 사서 여가생활을 즐기며 몇개월 지내다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갖고온 돈 곶감 빼먹듯 할수는 없고 일거리를 찾아야겠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전문기능이 없으면 취직은 바늘구멍이고 사업을 하자니 영어가 가로막는데다 많지 않은 재산 들어먹을까 두렵다.
신종이민이 집중되는 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는 이런 어정쩡한 관망상태에 있는 투자.사업이민자들이 상당히 많다.
무엇을 할 것인가.캐나다에는 「한국인의 5대사업」이란 말이 있다.그로서리(잡화상).세탁소.코인 론드리(빨래방).샌드위치 숍.스모크 숍(담배.잡지 등을 파는 구멍가게)을 일컫는 말이다.이 사업의 특징은 몸으로 때우는 직종이라 유창한 영어가 필요없고 투자액이 적은 대신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점이다.『내가 대기업 부장출신인데…』라는 식의 자존심만 버리면 먹고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4인 가족의 한달 생활비는 3천달러(약1백65만원,1캐나다달러=약 5백 50원)면 충분하기 때문이다.가장 흔한 것이 그로서리.
토론토에서 6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는 朴모(47)씨는 부인과 함께 매일 오후11시까지 일한다.가끔 부인에게 가게를 맡기고 골프를 치러가는 외에는 토요일에도 가게에 매달린다.월수입은6천달러.이중 점포세등 각종 경비를 제하면 4천 달러정도 된다.이런 가게의 권리금은 10만달러.
샌드위치숍 권리금은 이보다 조금 비싸 월 4천달러의 순익을 올리는 가게라면 15만달러쯤 줘야 한다.직장인이 고객이므로 오전6시부터 오후5시까지만 일하고 토.일요일에는 쉴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포위치와 일하기에 따라서는 제법 짭짤한 수입을올리기도 한다.권리금 40만달러를 주고 밴쿠버 중심가에 있는 그로서리를 인수한 金모(43)씨는 현지인 종업원을 두고 휴일도없이 하루 14시간씩 3백65일 일한다.하루 매상 4천달러.점포세.종업원 인건비.잡비등을 제하고 한달평균 2만6천달러의 순익을 올리고 있다.
이밖에도 교민들의 업종은 세탁소.빨래방.스모크 숍.비디오 가게.미용실.야채상.노래방 등 수십가지이나 영세업종이라는 점에서일치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캐나다보다 이민역사가 짧은 만큼 사업기회도 더 적은 편이다.
호주의 경우 사업이민자는 놀면서 지내는 사람이 대부분.
가장 큰 원인은 언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또 광활한 땅에 비해 인구가 많지 않고 사업도 나름대로 틀이 잡혀있어이민자가 기회를 잡기 쉽지 않다.슈퍼마켓만 하더라도 대형체인점이 잘 발달돼 있고 현지인들의 소비형태가 대량구 매식이어서 동네 슈퍼마켓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사업은 교민과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기념품점.여행사.잡화점 등에 집중돼 있다.시드니에는 한인 식당만 1백여곳에 이른다.
이처럼 제한된 업종에 몰리다 보니 부작용도 따른다.대표적인 경우가 여행사.20곳이 넘는 시드니의 여행사들은 쇼핑알선 커미션으로 차액을 메우며 덤핑경쟁을 벌이다보니 시즌이 지나면 1~2곳은 쓰러지고 만다.
『이곳은 기회의 나라가 아닙니다.물론 일찍 이민온 사람들 중제조업으로 제법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사업으로 큰 돈 벌겠다는생각은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먹고 살 정도 번다고 보면 될 겁니다.』91년 투자 이민 와 부동산회사를 하는 전태성(全泰成.59)씨의 말.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 해럴드 7월4일자는 「부유한 아시아인들이 직업갖기에실패하고 있다」는 1면 톱기사를 실었다.대만 이민자에 대한 오클랜드 대학의 조사를 토대로 쓴 이 기사는 이민자 대부분이 영어를 못해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당수 의 이민자가 돈은 있으나 제조업 등 적극투자를 하는 예는 6%에 불과하며 38%가 예금.주식 등 소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대만인들처럼 우리나라 투자 이민자들도 대부분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언어장벽,산업정책.구조.
세제등 투자정보 부족,실패에 대한 부담 등으로 파악된다.
***집단투자땐 유망사업 많아 오클랜드의 한인업종은 2년전 식당.기념품점등 10종미만에서 최근 골프스쿨,런치바.비디오 숍.김치판매상.미용실.야채상.과일점.노래방 등 80여개로 다양해졌으나 역시 교민.관광객 상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민자들이 제대로 된 규모의 사업을 못하는 이유는 언어장벽 외에도 돈이 없고,돈이 있더라도 정부의 외환규제 때문에 현지에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투자.금융 컨설턴트회사인 「카나글로브」(CANAGLOBE)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준호(李俊昊.41)씨는 이에대한 대책으로 집단투자를 제안한다.그는 『10명이 30만달러씩 투자하면 3백만달러가 모이고 이를 근거로 사 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은행에서 6백만달러는 어렵지 않게 융자받을 수 있다』면서 『단위가 커지면 광산 채굴권,콘도미니엄 건설.분양 등 전망좋은 사업이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李德寧.趙顯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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