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사고 줄이는 자동조절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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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삼풍백화점 참사」가 일어난 뒤 여당.야당,그리고 정부가 차례로 내놓은 사고 방지책은 한결같이 그 일을 전담할 정부기구를새로 만드는 것이었다.정부의 규모를 줄이고 규제를 풀어야 사회가 발전하는 줄 모두 알지만 실제론 규모는 커지 고,규제는 심해지는 판에 일만 났다 하면 정부기구를 새로 만들자는 얘기부터나오니 참으로 답답하다.
정부기구를 새로 만드는 것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새로운 정부기구는 더 복잡하고 엄격한 규제를 뜻하고 그런규제는 건축허가를 받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뇌물을 포함해 늘어남을 뜻한다.자연히 공사에 들어갈 자금이 줄어들어 부실한 공사가더욱 부실해진다.
반면에 그냥 내버려두면 사회의 자동조절기구(self-adjusting mechanism)들이 방해받지 않고 움직여 사고의위험이 줄어든다.이미 우리 사회는 너무 높은 위험들에 대해 갖가지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핵심은 정부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조절기구다.사회를 개선하는 실용적인 준칙들 가운데 하나는 새뮤얼 브리튼의 얘기를 빌리면 『될 수 있는대로,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이거나 자동조절기구를 찾아라』이다.
모든 사람이 건설공사를 안전하게 만드는 기구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감리(監理)라고 한다.어째서 그런가.원래 감리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건축물의 주인이므로 그의 이익이 자동조절기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주인들이 위험스럽지만 값싼 건축물을 원한다.그런 상태에선 감리를 맡은 기술자들도,허가를 맡은 공무원들도 감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게 할 수 없다.
조순(趙淳)서울시장이 제안한「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책임감리제」는 다른 방안들보다 낫지만 본질적으로 건축물의 주인들이 아니라기술자들이나 공무원들에게 기댄다는 점에서 자동조절기구를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면 감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자동조절기구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화물들을 싣고 위험한 환경에서 움직이는 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승객과 화주들은안전한 배를 찾지만 그들은 어떤 배가 ■마만큼 안전한지 알 수없다. 그래서 그들은 보험에 든다.사고가 나면 자신들이 손해를보게 되므로 보험회사들은 배를 안전하게 하는 일에 큰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게 된다.국제무역에 관한 법규가 거의 없었던 18세기 중엽에 이미 런던의 보험업자들은 「로이드 선급협 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배를 검사하고 등급을 매길 뿐 아니라 배의 건조를 감리하도록 했다.
그 뒤로 배를 안전하게 만든 규정들은 거의 모두 이 민간 단체가 고안하고 시행한 것들이다.정부나 국제단체들이 한 것이 아니다. 만일 큰 건축물들을 꼭 보험에 들도록 하면 위험을 줄이는 자동조절기구가 움직이게 되어 사고가 날 위험은 크게 줄어들것이다. 위험한 건축물을 가진 사람들은 비싼 보험료를 내거나 아예 부보(付保)하지 못해 큰 손해를 보고,부실한 감리회사들은보험회사들로부터 외면당해 일거리를 찾지 못하며,위험도를 제대로평가하지 못하는 보험회사들은 파산하므로 경제적 계산에 서 위험을 합리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제주체들은 빠르게 도태된다.
보험에 들어야 할 건축물을 늘리는 것은 대책이라기엔 너무 싱거워 보인다.특히 거창한 이름을 단 정부기구를 새로 만드는 것에 비기면.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위험을 줄이는 조치다.게다가 삼풍백화점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주지 못해 정부가 나서야하리라는 사실이 일깨워 주는 것처럼,부보 대상을 늘리는 것은 충분한 보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험이 제 몫을 하려면 물론 보험산업을 포함한 금융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이 사실은 지금 우리 금융산업이 원시적이어서 자유화가 시급하다는 사정을 일깨워준다.
금융시장은 본질적으로 사회가 갖가지 위험들을 평가하는 기구다.자연 우리 금융산업이 원시적 상태에 머무르는 한 어떤 사고 방지책들이 나오더라도 사고의 잔류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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