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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노래 듣고 “악! ” … 한국을 제2 고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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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홍익대 인근의 연주실 겸 갤러리. ‘곱창전골’ 밴드의 리더인 일본인 사토 유키에(佐藤行衛·45·사진)를 비롯한 인디음악계 인사들이 이른 저녁, 조촐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중국집에서 배달해온 양장피를 맛보던 사토가 긴 곱슬머리를 흔들며 “오, 이 여자 대단해!”라고 외쳤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가 “여자가 아니고, 겨자야”라고 발음을 정정해주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한국에 산 지 10년 가까이 되지만 한국어 발음이 여전히 어눌한 사토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발음은 좀 어색할지 몰라도 사토는 한국 포크락은 물론 아방가르드(전위) 음악까지 소화해내는 홍대 앞 인디음악계의 거물이다. 지금이야 얼큰한 짬뽕 국물을 마실 정도로 한국화했지만, 1995년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보통’ 일본인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포크·록 음악에 빠졌던 그는 고향인 도쿄에서 음악 활동을 할 생각이었지만 95년 관광차 서울을 찾았다가 인생 항로 자체를 바꿨다.

“한국 음악을 알려고 무작정 큰 음반 매장을 찾아가 ‘코리안 포크 록, 플리즈’라고 했죠. 그래서 추천받은 것이 신중현과 산울림, 들국화였어요. ”

일본으로 돌아가 음악을 들어보곤 “악”소리를 질렀단다.

“그건 정말 하나의 ‘발견’이었죠. 이런 음악이라면 꼭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신중현의 ‘미인’은 정말…!”

가사는커녕 제목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게 아쉬워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급기야 일본인으로 구성된 한국음악 밴드 ‘곱창전골’을 결성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에서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걸 찾다 보니 ‘곱창전골’이 떠올랐죠. 하하.”

그러다 본고장이 한국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유명 DJ 김광한씨와의 인연으로 소규모 무대에 오르기로 했으나 연주 당일 당국에서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외국인 공연은 불가’라고 통보해왔다.

“그래서 기념사진만 찍고 말려고 했는데, 리허설을 본 공연장 주인이 ‘너무 좋다’며 그냥 공연하자고 하더군요.”

그 뒤 서울에 가끔 연주 여행을 왔고, 99년 한국에서 ‘곱창전골’ 데뷔앨범도 냈다. 인디밴드의 메카였던 홍대 인근을 주무대로 ‘황신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등 인디음악계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잡아갔다. 계속 모은 한국 음악 앨범이 1만 장에 이르고, 『나는 한국 노래가 좋다』라는 책까지 냈다. 신중현과 김창완을 만나는 소원도 이뤘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아방가르드 음악에 빠졌고, 2003년 ‘불가사리’라는 실험음악 밴드를 결성했다. 이로 기타를 물어뜯고, 숟가락으로 기타 줄을 튕기는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음악’을 하는 그룹이다.

“밴드 이름을 ‘불가사의’라고 하고 싶었는데 제가 워낙 발음이 안 좋아서 ‘불가사리’가 됐어요.”

일본 음악인을 초청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11일 마포 합정역 인근 ‘요기가 갤러리’에서 올리는 무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난 몇 년간 매달 마지막 일요일마다 일반인을 상대로 정기공연도 해왔다.

이런 사토에게 2008년은 더욱 의미가 깊다. ‘사토 유키에’라는 이름을 건 첫 솔로 앨범을 6월경 발매하기 때문이다. 앨범엔 그가 작사·작곡한 한국어로 된 포크·록 음악을 주로 담을 예정이다.

“99년 ‘곱창전골’ 데뷔 앨범엔 일본인 이름을 넣지 못하게 했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죠. 이번 곡 가운데 ‘고향’이란 노래에 애착이 갑니다. 2006년 일본에 있으면서 한국이 그리웠는데, 그때 ‘내게 고향이란 뭘까’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죠.”

지금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제가 힘차게 재출발을 하는 시기입니다.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더욱 열심히 하는 거죠. ‘곱창전골’ ‘불가사리’ 모두 파이팅!”

글·사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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