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대장정>11.볼가그라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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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2년 연전연승하던 독일군은 바쿠의 유전지대를 확보하기 위해스탈린그라드를 침공한다.그해 8월,스탈린그라드에서는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져 불바다가 된다.11월이 되자 퇴각했던 소련군은 대포위망을 구축했고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진다.추 운 러시아의 겨울은 다가왔고,포위망 때문에 보급로가 끊겼다.히틀러는 목숨걸고 항전하라고 명령했지만 여름용 장비 뿐이었던 독일군은 견딜 재간이 없었다.43년2월이 되자 독일군은 궤멸 상태에 빠진다.
스밀로프 장군이 이끄는 소련군 62군 과 추이코프 장군의 64군은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독일군을 무차별 공격한다.독일군 총22개 사단 전멸,20만명이 전사하고 9만명이 투항했으며 사령관피블로스 원수가 포로로 잡히고 만다.이 전투는 독일군 전체의 전력을 약화시켜 마침내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는 가장 큰 동인(動因)이 되었다.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빛나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은 그때까지 외국과의 전쟁에서 연패를 거듭하던 러시아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다.대국 러시아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것이다.그래서 이도시에는 전쟁기념물이 가득하다.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제분소공장 건물이 도심에 보존되어 있으며,마마예프 언덕에는 아마도 세계 최대일 모국상(母國像)이 승리의 기억을 늘 새롭게 되살려내고 있다.슈만의『트로이메라이』가 은은히 울려퍼지고 있는 전몰장병 위령관은 언제나 조문객들로 붐비고,도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자랑스레 얘기한다.
붉은 벽만 을씨년스레 남아 있는 제분소 공장을 촬영하고 나오면서 불현듯 우리의 6.25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명동 한복판에 폭격맞은 건물 하나 남겨 놓지 않았을까.』 자랑스런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남겨서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지혜가 아쉽게 느껴지던 볼가그라드 여정이었다.
김용범〈다큐멘터리감독.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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