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달인이 16년 동안 한숨도 안 주무셨다면 … ‘알람’ 김병만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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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 서나 아이디어 짜내기에 바쁘다는 ‘달인’팀. 녹화를 하루 앞둔 인터뷰 당일에도 새벽 4시까지 연습했다. 왼쪽부터 김병만·노우진·류담. [사진=변선구 기자]

“16년 동안 방귀를 연구해 본인이 원할 때 자유자재로 방귀를 컨트롤하시는 방귀의 달인 ‘보옹’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산만 해오신 세계 최고의 계산가 ‘일수’ 김병만 선생님”….

요즘 ‘달인’ 개그 한두 가지 모르면 젊은 사람들 대화에 끼기 어렵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코너와 코너 사이를 이어주는 일명 ‘브리지’로 시작해 넉 달 만에 KBS2 ‘개그 콘서트’(연출 김석현)의 간판이 된 ‘달인’. 인터넷에 ‘○○ 김병만 선생님’ 목록이 떠돌 정도로 인기다.

사기성이 농후한, 그러나 밉지 않은 달인과 그의 바보 같은 수제자, 달인의 수작에 맞장구치는 척하다가 그의 허세를 폭로하는 사회자. 이렇게 3인의 호흡이 기가 막히다. ‘달인 3인조’ 김병만(33)·류담(29)·노우진(28)을 1일 오전 만났다.

이날은 녹화를 하루 앞두고 각자 준비한 분량을 담당 PD에게 ‘검사’받는 중요한 날. 그래서 밤새워 연습하다 새벽 4시 무렵에 잠들었다고 했다. 네댓 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해 다소 고단한 기색이었지만, 1시간30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선 웃음이 넘쳤다.

# 달인의 매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뻔뻔함!

‘달인’의 웃음 코드는 허풍과 뻔뻔함이다. 16년 동안 뭔가를 엄청나게 연구 혹은 연마하셨다는 김병만 선생님은 사실 엉터리다. 그런데도 달인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끝까지 우긴다. 레몬·청양고추·태국고추 등 매운 음식 세례를 받아 눈물을 머금을지언정 끝끝내 맵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맹수들과 어울리거나 나이애가라 폭포 앞에서 빨래하는 사진은 합성 티가 역력하지만, 역시 김병만 선생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사회자: 16년 동안 눈빛을 연마해 눈빛 하나로 모두를 유혹하시는 ‘줌마’ 김병만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달인: 네, 제가 쳐다만 봐도 5초 안에 다 넘어갑니다.

사회자: 선생님, 그런데 선글라스를 끼셨네요.

달인: 네, 안 쓰면 큰일납니다. 어젠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요. 선글라스 안 쓰고 나갔다가 동네 개하고 눈 마주쳐서 집까지 쫓아와 떼어내느라 아주 애먹었습니다.

사회자: 네에… 선생님, 그런데 결혼은 안 하셨습니까?

달인: 결혼, 못 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장모하고 눈 마주쳐서 그분이 고백하시는 바람에 바로 파토났습니다.

결국 김병만 선생은 사회자의 집요한 요구에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러나 그 눈빛에 끌려 무대로 뛰어나오는 방청객은 한 명도 없다.

“달인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 셈인데, 김병만 선생은 전혀 아니죠. 그런데도 ‘못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하거든요. 사회자는 ‘이 사람, 사(邪)자 냄새가 나네?’ 의심을 하면서도 ‘어디 한번 놀아봐라’는 식으로 계속 놔둡니다. 달인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까지 뻔뻔하게 버티다가 결국 쫓겨나죠. 수제자는 바보죠. 가령 가위바위보의 달인이다, 이러면 경건한 태도로 선생님 손 주무르고 파우더 발라주고 그러잖아요. 하긴 바보가 아니면 누가 수제자를 하겠어요.”

사회자가 손에 말아 쥔 종이로 달인의 머리를 때릴 때, 즉 달인의 엉성한 ‘16년 적공(積功)’이 무너져 내릴 때, 웃음은 터진다. 고정관념을 깸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건 개그의 기본.

# 앉으나 서나 ‘달인’ 생각

개그 코너가 넉 달 넘었으니 장수한 셈이다. 한 회당 ‘달인’은 보통 3개씩 들어간다. 지금까지 한 것만 55개 가량. “다른 코너 1년치 분량이죠. 처음엔 회당 1분30초 정도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주 긴 건 8분까지도 갑니다. 웬만한 코너 2개 할 시간이죠.”

이쯤 됐으니 아이디어가 떨어질 때도 됐을 법하다. ‘달인’을 갓 시작했을 당시 아이디어를 쟁여놓은 게 A4 용지로 20장 쯤 된다(글자가 몇 포인트인지는 비밀이다). 그러나 “그때 당장 쓰지 않았던 건 그만큼 재미가 떨어진다는 증거”라서 비축분에서 도움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단다. 아이디어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할까.

인터뷰가 시작된 지 20여 분쯤 흘러 “차 좀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류담과 노우진은 녹차를 골랐고, 김병만은 “산삼차 주십시오”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16년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삼을 키워오신 ‘짝퉁’ 김병만).

기자: 차(茶)의 달인 하면 김병만 선생의 호는 뭐가 될까요?

김병만: 글쎄… 중형 김병만 선생?

노우진: 아냐, 세단 김병만 선생(차(茶)를 차(車)로 바꾼 농담).

김병만: (녹차 티백을 들어보이며) 그런데 이거 재미있겠다. 뭐든지 다 이렇게 실을 묶어서 담그는 거야. 족발 어때? 술 마신 다음날 족발 담근 차 한 잔이면 거뜬합니다.

류담: 좋네. 그런데 족발을 종이컵에다 넣을 수도 없고, 어디다 넣지?

기자: 찜통에 넣으시죠(일동 웃음).

김병만: 으라차차는 어때? 아차는? 아차, 하면 못 먹을 수도 있습니다. 티백이 물을 다 흡수해 버리거든요.

일동: ….

아이디어 회의를 따로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가 거의 ‘달인’ 얘기다. 식당에서 국 뜨는 아주머니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다니, 앉으나 서나 ‘달인’ 생각뿐인 듯하다.

# 성인 대상 소재도 하고 싶어

인기를 실감하는 지금, 기분은 좋지만 그만큼 압박도 없을 수 없다. “시험대에 오르는 느낌이죠. 시청자의 PD화라고나 해야 하나, 시청자 수준이 너무 높아졌어요”(김병만), “다들 새로운 거, 신기한 거를 더 요구하는 느낌이에요. 어디 나왔던 말이나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으면 금방 지적이 들어와요.”(류담), “‘달인’은 반전이 중요한 코너인데, 웬만한 건 다 예상을 하니까 허를 찌르기가 참 쉽지 않네요.”(노우진)

 남들 1년에 할 분량을 다 해버린 지금, 이들은 가끔 지상파 무대가 좁다고 느낀다. “성인 대상 소재가 좀 많겠어요? 16년 동안 여자를 모르고 살아오신 ‘모텔’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성교육만 해오신 성교육의 달인 ‘콘돔’ 김병만 선생님…이렇게 과감한 걸 시도해 보고 싶은데 아쉬울 뿐이지요.”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촬영을 하면서 즉석에서 ‘뉴스의 달인’으로 애드리브를 요청했다.

류담: 네, 이 시간에는 16년간 뉴스만을 해오신 ‘오보’ 김병만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김병만: 전 항상 새로운 소식만 전합니다. 한국이 월드컵 4강 나간 것도 저만 알고 있었습니다.

류담: 본인만요? 그거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김병만: 속보입니다(옷을 들춰 배를 보이며).

류담: 나가!

노우진: 저, 그런데 9시 뉴스는 몇 시에 하나요?

글=기선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그동안 방송된 ‘달인’ 주요 리스트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신 개안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변을 보지 않으신 무변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김밥을 싸오신 김밥의 달인 삼각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단 한 번도 간지러움을 못 느끼신 불감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독심술을 연마해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라식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무술을 연마해 오신 무술의 달인 흰띠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단 한숨도 잠을 안 주무신 알람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모든 사물을 종이로 접어오신 종이접기의 달인 A4 김병만 선생님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쏘리 김병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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