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좋지만 … 차 선팅 규제 없애면 사고 늘릴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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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자동차 선팅 규제를 없앨 모양이다. 지난달 하순 법제처가 이렇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는 규제로 꼽혀서다. 규제야 적을수록 좋다. 이 정부가 규제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바람직하다. 그렇더라도 유의해야 할 게 있다. 모든 규제가 다 악(惡)은 아니라는 점 말이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규제도 많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외부비용을 초래하는, 즉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한 규제마저 없애선 안 된다는 얘기다.

자동차 선팅이 그중 하나다. 요즘 선팅을 하지 않은 차량은 거의 없다. 차량 10대중 8대(81.3%)가 선팅을 했다는 조사도 있다. 하긴 좋은 점도 많다. 자외선이 차단돼 피부 건강에 좋고 여름철엔 실내온도도 낮다. 외부에서 운전자를 잘 볼 수 없으므로 익명성도 보장된다. 그러나 이는 ‘나의 편리’다. 이로 인해 남이 피해를 본다면 나의 편리성은 규제돼야 한다. 선팅을 하면 밖을 잘 볼 수 없다. 교통사고 위험이 그만큼 높아진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를 낸 사람 가운데 네 명 중 한 명 이상(26.5%)이 짙은 선팅으로 사고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선팅을 할수록, 전문용어로 가시광선 투과율이 낮을수록 운전자의 반응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40% 이하면 보행자가 차량 옆에서 갑자기 나타났을 때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선팅을 하지 않은 차량보다 50%나 늦다고 한다. 가시광선 투과율 40%란 그리 높은 수치가 아니다. 선팅이 좀 진하다 싶은 차량은 40%는커녕 20%도 채 안 된다. 차량 두 대 중 한 대 이상(55%)이 40% 미만이라는 조사도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나 편하자고 남을 해쳐선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이 상식을 선팅이 깨고 있다면, 선팅 규제를 없애겠다는 법제처의 방침은 당연히 잘못됐다. 공장 주인이 돈 아끼려고 폐수를 하천에 버리는 건 불법이다. 환경오염과 선팅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동일한 행위다. 외부비용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외부비용이 있으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생산량보다 더 많이 생산된다. 생산비가 덜 들어서다. 마찬가지로 선팅을 규제하지 않으면 선팅 차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선팅은 계속 짙어진다. 이로 인해 남이 피해를 보는 교통사고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외부비용을 없애려 만든 규제조차 국민생활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없애는 건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다.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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