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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골드먼삭스’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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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국판 ‘금융 빅뱅’의 최종 기착지는 대형 투자은행(IB)의 탄생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위해 인위적으로라도 금융 생태계를 뒤흔들겠다는 뜻을 자통법 시행령에서 드러냈다. 금융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춰 신규 금융사라는 ‘메기’를 풀어놓으면 먹이가 부족해진 기존 금융사들은 투자은행이란 ‘너른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글로벌 플레이어가 활개치는 바다로 나가려면 서로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다 보면 ‘한국판 골드먼삭스’라는 ‘고래’도 출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금융위 관계자는 “위탁매매 등 단순업무에 소형사들이 진출하면 대형 금융회사들은 고수익이 나는 투자은행 업무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IB와 비교해 보면 국내 증권사들은 덩치나 영업 방식에서 ‘잔챙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IB인 골드먼삭스는 자본금 25조원에 한 해 26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린다. 국내 증권사를 모두 합해도 못 따라가는 규모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5대 증권사의 IB 업무를 통한 수익은 전체의 20%대에 불과하다.

대형 투자은행의 탄생을 위해 금융당국은 ‘당근’도 준비했다. 우선 금융 투자회사가 기업공개(IPO)나 M&A를 추진하는 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있게 허용했다. 지금껏 국내 증권사들은 이런 단기 대출(브리지론) 기능이 없어 대형 거래를 중개할 때 외국계나 은행을 끼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 지급보증을 해 줄 수 있는 기능도 10년 만에 회복시켰다. 이럴 경우 당장 자기자본이 2조원 이상인 5대 대형 증권사가 유리해진다. 하지만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대형사들도 본격적으로 IB 업무를 하려면 자본 확충을 통해 몸집을 더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먼삭스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창립 후 14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를 최대한 축소한다고 해도 금융사의 진입과 퇴출, M&A에서 상당한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 많다. 최악의 경우 기존 금융사들과 신규 금융사들이 좁은 물에서 먹이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

박기형 삼성증권 전략기획파트장은 “자칫 M&A는 저조한 상태에서 수수료 경쟁만 낳을 가능성도 있다”며 “연기금·국민연금 등의 투자를 유도해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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