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획일적 학부제 폐지는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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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 정부 대학 자율화 정책 기조의 일단이 가시화됐다. 정부는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대학 자율화 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과감히 완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중 하나가 학생 모집단위 광역화 규정 폐지다. 10년 넘게 시행돼 온 학부제를 없애고 대학 자율로 신입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학 자율화 차원에서 규제 폐지 방향은 옳다. 그러나 학부제 폐지가 모든 대학의 학과제 회귀로 이어져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학부제는 정부에 의해 획일적으로 강제된 정책이다. 정부는 학부제 시행과 연계해 재정 지원에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대학을 옥죄었다. 제도 자체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학생들이 특정 전공에 쏠려 순수·기초학문은 쇠락 위기를 맞았다. 사정이 이러니 학부제가 폐지되면 대학들이 줄줄이 학과제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다. 대학으로선 학생 선발의 편리성이나 선점 효과 측면에서 학과제가 유리할 수 있다. 교수사회의 학문적 이기주의와 배타성도 학과제를 부추긴다.

그럼에도 학부제의 필요성이 간과돼선 안 된다고 본다. 학부제 도입 취지는 기존 학과·학문 간 장벽을 낮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연구와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취지 자체가 그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식의 결합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학문 간 융합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영세한 학과 체제로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쏟아지는 상황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대학이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할 문제다. 무조건적인 학부제 폐지와 학과의 지나친 세분화로 대학의 연구와 교육이 전공 벽에 갇히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전공을 한데 묶은 형식적 학과 짝짓기를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학부제 운영이 더 효율적인 학문 분야를 가려내 다양한 규모와 방식으로 운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대학의 자율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