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환자를 살리는 말,죽이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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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얼마전 간질환으로 某대학병원에서 진료받았던 K씨(56)는 의사의 심각한 표정에 잔뜩 긴장했다.
환자의 증상을 듣는둥 마는둥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혀를차기까지 해 절망적인 심정이 되었다고 한다.진료를 마치고도 궁금증을 묻는 그에게 의사는 특별한 설명없이 『술을 계속 마시면위험하다』는 식의 지시형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가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당연했다.이곳에서 환자는 『밖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가슴속 응어리가 풀렸다고 한다.게다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사는 환자 말을 경청했고 그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 는 상황을 이해하면서 술좌석을 피하는 요령을 나름대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가 술을 자제할 결심을 한 것은 오로지 의사에 대한 신뢰감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최근 일본의 한 의료전문지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것이 재미있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어설픈 상식이 늘고 있다」며 환자들이 병원을 바꾸는 이유에 대해 「분별없는 행동」으로 생각하는데 반해환자들은 「질병에 관한 설명부족」과 「의사의 태도」때문에 병원을 전전하는 것으로 응답,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 잡지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 치료효과는 물론 병원을 전전하는 요인이 된다며 의사들도대인화술을 익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환자를 위로한다고 『대단치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거나,폐경여성에게 『이젠 자궁이 필요없다』고 말하는등 무심코 던진 한마디도 상황에 따라선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하고 있다.병원계는 의료시장 개방과 기업의 병원사 업 참여로 지금까지 의료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병원의 변화는 주로 사무직이나 의료외적인 면에서이루어질뿐 실질적인 의사의 진료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생각이다.
의사들이 화술을 다듬는 것도 또다른 병원 경쟁력이 된다는 점에서 진료실의 대인기술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때다.
〈高鍾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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