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우주정거장 독자 실험실에 5조 쏟아 부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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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11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29·항공우주연구원 소속)씨. 그는 8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유인우주선을 타고 지구궤도를 34바퀴 돈 뒤 10일 밤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할 예정이다. 이씨와 러시아 우주인 2명을 실은 소유스 TMA-12호(유인우주선)가 ISS와 도킹한 뒤 양쪽의 압력이 같아지면 우주인들은 ISS로 몸을 옮겨 각자의 임무를 수행한다.이소연씨는 ISS에서 18가지 우주과학실험을 한다. 실험에 따라 짧게 5분, 길게 36시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 지상에서 무중력 환경을 만들어 실험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낙하타워를 건설해 실험물체를 자유낙하시키는 방법 등이 있다. 이렇게 해도 무중력을 얻는 시간은 2∼25초에 불과하다.

한국 우주인 탄생을 계기로 본 아시아 우주개발 경쟁

ISS는 무중력 환경을 장시간 제공하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이번 우주실험은 무중력 상태에서 식물 발아·생장, 세포 배양, 노화 유전자, 심장 활동과 같은 생명과학 분야가 주류를 이룬다. 또 기상연구를 위한 한반도 촬영장비도 돌린다.

그리고 우주와 지구에서 동시에 식물을 기르며 비교할 수 있는 장비가 콩·무 씨앗 등과 함께 실린다.
이번 우주비행에는 까다로운 우주식품 인증 절차를 마친 볶음김치·고추장··된장국·녹차·홍삼차·수정과·밥 등 한국 식품 10가지가 따라간다.

이소연씨는 약 8일간의 실험을 끝낸 다음 지난해 10월 우주정거장에 도착해 도킹 상태에 있는 TMA-11호로 바꿔 타고 19일 오후 지구로 돌아온다. 이씨가 탄 유인우주선이 ISS와의 도킹을 풀고 대기권에 재돌입해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에 착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시간23분이다.

왼쪽부터 이소연씨,세르게이 볼코프(선장),올레그 코노넨코(비행엔지니어)

미국의 우주왕복선 궤도선(오비터)은 대기권을 뚫고 재돌입한 뒤 일반 항공기처럼 활주로에 착륙하는 반면 러시아의 유인우주선은 낙하산을 펼쳐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에 내린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200억원의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일각에선 ‘러시아의 소유스 유인우주선을 타고 ISS를 방문해 우주실험을 하는 게 단순 우주여행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항공우주 개발 역사가 짧은 한국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최근 미국 우주왕복선과 러시아 소유스 유인우주선에 많은 외국 우주인이 탑승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ISS 건설사업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ISS의 한 모듈인 ‘기보’라 불리는 일본실험모듈(JEM)을 개발하는 데 5조원 이상을 썼다.

‘기보’의 조립과 우주실험을 위해 10여 명의 일본 우주인이 우주정거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미국도 자국 우주왕복선에서 기술적 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러시아에 비용을 대고 미국 우주인을 승선시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은 기술적 측면보다 우주개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우주는 아직 미지의 개척지이며 무궁한 지식과 에너지의 보고(寶庫)다. 향후 30∼40년 안에 인류는 달과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 우주기지를 건설해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고 행성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한국 우주인 배출 프로젝트는 우주개척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대국은 치열하게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1990년대 초 냉전체제 붕괴 이후 러시아가 포기한 우주패권을 잡기 위해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2003년 중국은 선저우 5호를 발사해 최초의 우주인을 태우고 우주궤도를 도는 데 성공했다.

2005년에는 2인승의 선저우 6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 귀환시켰다. 올해 베이징 올림픽 직후에는 선저우 7호를 띄워 우주 유영을 계획하고 있다. 이어 2020년까지 20t급의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 주도의 ISS 건설사업에 참여할 의사를 여러 번 타진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중국은 70년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이후 100여 기의 위성을 발사했다. 그 결과 위성과 발사체 분야에서 상당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지난해 10월 달 궤도를 선회하는 탐사선 창어 1호를 성공리에 발사해 달의 지형과 지표면 성분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12년에는 무인 우주선을 달 표면에 착륙시켜 샘플을 수집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께 달에 우주인을 보낼 계획이다.

중국은 미국에 맞먹는 초강대국의 위상과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865km 고도에 있는 수명이 다된 기상위성을 격추하는 위성요격시험에 성공했다. 이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대한 대응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어 미국과 서방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은 위성요격시험을 통해 우주를 군사화하는 단계에서 무기화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과시했다.

일본도 중국 못지않게 적극적이다. 50년대 말 시작된 일본의 우주기술 개발은 정밀도·완성도 측면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일본은 중국과 같은 해인 70년 ‘오수미’라는 초소형 위성을 자국의 위성발사체로 발사해 스페이스 클럽(Space Club·우주선진국)이 됐다.

일본은 50여 년간 100여 기 이상의 위성과 다양한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렸다. 그러나 일본의 우주개발 사업은 고비용 구조로 이루어져 상업화를 하기 어려웠다. 90년대 말 H2와 M-V 발사체의 연이은 실패 때문에 전체 우주개발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이후 모든 위성과 발사체의 개발단가를 절반으로 낮추고 상업화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 추진체계도 바꿔 2003년 현재와 같은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탄생했다.

일본은 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를 구실로 정찰위성을 개발해 쏘아올렸다. 현재 2기의 전자광학카메라 위성과 2기의 전천후 영상레이더 위성을 가동해 한반도 구석구석을 24시간 찍고 있다. 중국의 위성요격시험 이후엔 총리실에 우주개발전략본부를 설치해 총리가 직접 챙기고 있다.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우주기본법안도 의회에 계류 중이다. 그뿐 아니다. 지난해 9월에는 ‘가구야’라는 달 탐사 궤도위성을 발사해 달 표면 탐사에 나섰다. 역시 강대국의 위상과 우주의 군사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중·일이 벌이는 우주패권 경쟁은 결국 동북아 안보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시아의 또 다른 우주강국은 인도다. 이달 중 달 탐사위성 ‘찬드라얀 1호’를 자국의 PSLV라 명명된 발사체를 이용해 발사한다. 표면상 목적은 달의 에너지 탐사와 우주과학의 지식 확대다. 그러나 인도 역시 군사력 강화라는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은 중·일·인도에 비해 우주개발 역사가 훨씬 짧다. 우주개발을 위해 쓰는 국가예산은 연 3000억원대에 불과하다. 95년에야 범정부 차원에서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위성) 개발을 시작해 아직 위성기술을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고성능의 위성 탑재체(예컨대 전천후 레이더, 통신 중계기, 우주과학기기 등)를 빼고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위성 임무를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2006년에는 지상의 가로·세로 1m의 물체를 식별할 만큼 고해상도 영상을 제공하는 아리랑위성 2호를 성공리에 발사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우주개발사업 로드맵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달 주위를 선회하는 궤도 탐사선을, 2025년까지 달 착륙선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선보였다.

달 탐사와 같은 우주탐사의 핵심기술은 탐사선을 달이나 행성에 보낼 수 있는 우주운송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유인우주선을 발사할 정도가 되려면 고성능의 우주선 발사체, 로켓, 유인우주선을 개발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주선의 랑데부와 도킹을 위한 초정밀 제어기술도 필요하다.

여기에다 각종 생명지원 시스템과 우주인의 안전을 담보하는 안전제어 시스템 기술 등이 확보돼야 한다. 유럽과 일본도 오랫동안 연구개발했지만 자체 개발한 유인우주선은 아직 없다.

우주개발 사업은 첨단 과학기술의 산실인 동시에 국제정치의 주도권과 군사·안보 문제가 맞물린 전략적 영역이다. 그래서 강대국은 물론 유럽·인도·브라질·이스라엘 등도 경제력에 상관없이 국가 차원에서 우주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장영근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공대와 테네시대에서 항공우주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항공대에서 우주공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과학재단 우주단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공위성과 우주' 등이 있으며 국내외에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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