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갈아서 저절로 된 그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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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13면

‘나인 투 식스(9 to 6)’. 영화 제목이 아니다. 화가 이상남(55)씨가 하루 일하는 시간이다. 서울 구로구 천왕동 야산 가까이 엎드린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그는 종일 노동한다. 화가의 작업실이라 하기에는 건조하고 투박한 그곳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칠을 하거나 표면을 사포로 문지른다.

11년 만에 국내 개인전 여는 화가 이상남

콘크리트 바닥 한 구석에는 비닐하우스가 서 있다. 옻칠이 잘 먹도록 덥고 축축한 환경을 만든 옻방이다. 사방 여기저기 그를 기다리는 캔버스가 쌓여 있다. 한 점 한 점 완성하는 데 1년 이상 걸리는 작품들이니 쟁여진 제품 자재 모양 포장을 쓰고 있다. 영락없는 공장 풍경 속에서 화가는 말한다.

“밥 먹고 이 짓만 하라는데 뭐 어려운 일이 있을까요. 발 뻗을 집 있고 캔버스와 물감 넉넉하니 세상에 군자 놀음이지요.”
이상남씨는 변했다. 1970년대 미술동네에서 ‘잘생기고 건방지고 활개치고 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그가 작품 앞에서 수더분하게 두 손을 모은다. 당시에 그를 만난 한 지인은 “40년 만에 이렇게 열렬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고 기억한다.

“그는 불이었다. 물속을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또한 물이었다. 불속을 지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그러던 그가 뉴욕 생활 27년에 그림으로 삶을 씹고 또 씹는 도인이 되었다. 뉴욕 스탠튼 거리 176번지, 전쟁 끝의 폐허 같은 동네, 밤이면 쥐가 돌아다니는 허름한 10평 남짓 아파트에서 그는 밤마다 마음을 갈며 그림을 그렸다.

낮에는 막노동이나 페인트칠을 하러 다니며 양식을 구해야 했지만 누가 그림을 사겠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 팔기 위해 그리는 것도 아니고, 자기 손을 떠나도 될 만큼 완성된 작품이 없다는 이유였다.

“‘갈다’는 말이 있지요. 여러 뜻이 겹친 말이죠. 맞대어 세게 문지른다는 것, 문질러 닳게 한다는 것, 문질러 빛이 나거나 살이 서게 하는 것, 바수는 것, 또는 연마하거나 훈련하는 것. 사각사각 면도날로 뭔가를 갈 때 느끼는 강렬한 느낌, 타인의 촉각 건드리기가 제 그림입니다.”

피 말리는 뉴욕 생활 6년 뒤, 그는 명상 서적을 읽고 명상 음악을 들으며 탁발승이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듯 그림의 모래밭에 들어섰다. 격정적이던 색채와 붓질 대신 깊은 면과 부드러운 선이 화면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막에 이르러 그가 깨달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몸짓이었다.

“제 작품은 자연이 아닌 인간의 상상 속에서 형성된 형태들에서 시작합니다. 선은 죽음을, 원은 삶을 뜻합니다. 모든 인간의 시간은 선과 원으로 형성되지요. 제 그림은 죽음의 선과 삶의 원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탄생과 죽음이 나선형의 대각선을 이루며 긴장 속에 휘돕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연작 ‘풍경의 연산법(algorithm)’을 “아이러니죠”라고 한마디로 응축했다. 평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아이콘은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러하듯 제 몸으로 분열을 일으키며 음악처럼 멀리멀리 퍼져간다.

“뉴욕 작업실에 가면 천장 가득 손 드로잉 화첩이 쌓여 있습니다. 지금 그림은 그 수십 만 번의 갈고 씹음에서 나온 겁니다. 짝퉁은 아니라는 증거죠.”
사진 신인섭 기자


이상남씨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미술 공부를 한 화가다. 1972년 첫 전시를 열어 추상화가이자 무대미술가로서 독창적인 화풍을 인정받았다. 81년 뉴욕에 정착한 뒤 극도로 정제된 표현과 철학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일구며 국제 화단의 평가를 받았다. 뉴욕 브루클린 작업실과 서울을 오가며 여러 기획전과 개인전에 참가해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4월 10일부터 5월 7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 개관전에 초대받아 근작 7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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