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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전염병 AI, 느닷없이 4월에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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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방역당국 직원과 공무원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전북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한 양계 농장의 닭을 살처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조류인플루엔자(AI) 원인 규명이 미궁에 빠졌다. 지난해까지는 11~12월에 발생해 이듬해 3월이면 사라졌다. 그래서 중국 북부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가 주범으로 몰렸다. 그러나 처음으로 4월에 AI가 발생하면서 철새 탓으로만 돌리기 어려워졌다. 원인 규명이 복잡해진 배경에는 세계화와 환경 변화가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4일 전북 김제 AI 발생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11명에 대해 혈청검사와 역학조사를 했다. 이들은 모두 AI 발생국인 중국·베트남·몽골 출신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농장의 외국인 근로자나 인근에 사는 동료가 오염물질을 옮겨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I가 발생한 김제 용지면 일대는 산란계 집산지다. 하루에 달걀 100만 개가 나온다. 달걀을 골라내고 닭을 키우는 일은 외국인 근로자가 도맡는다. 용지면의 외국인 수는 108명, 김제시 전체는 1125명이다. 양계장은 ‘작은 다국적 기업’인 셈이고, 우리 농민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농장 근무 외국인은 입국 후 1시간의 방역 교육을 받을 뿐이다. 인권 문제로 무작정 혈청 검사를 할 수도 없다. 만약 동남아처럼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 온 외국인이 옷이나 물건에 바이러스가 묻은 채 입국했다면, 우리나라도 겨울철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AI가 발생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철새도 완벽하게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4월인데도 아직 돌아가지 않은 철새가 있기 때문이다. 채희영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장은 “청둥오리의 경우 100마리가 와서 10마리가 남아 텃새가 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며“환경 변화로 철새의 이동 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활하수로 하천의 영양분이 많아지면, 기온에 따라 이동하지 않고 먹이가 풍부한 곳에 머무르는 식이다. 사고 농장에서 8㎞ 떨어진 만경강 유역에서 지난해 12월 AI 항체를 가진 청둥오리가 발견됐다.

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닭의 면역력이 떨어진 것을 근본 원인으로 꼽는 분석도 있다. 이번에 AI가 발생한 농가에는 축사 7동이 있는데 한 곳에서만 닭이 집단 폐사했다. 유일하게 창문이 없어 환기가 잘 안 되는 축사다. 박희천 경북대(생물학) 교수는“같은 개체를 좁은 공간에서 키우다 보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며 “생산량을 늘리려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원인은 살인 사건처럼 DNA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이르면 1주일 후 나오지만, AI 족보 찾기가 어려워지면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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