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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을 넘어온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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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신문사 내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겉봉에는 안양우체국 사서함 101-3974호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를 열어 보니 정갈한 필체로 쓴 두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보낸 이는 자신을 ‘안양교도소에서 지내고 있는 유아무개’라고 밝혔다. 물론 일면식이 없는 이였다. 다만 스스로를 내 칼럼의 애독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교도소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내고 있다 하여 무의미하게 그저 시간만 때우기 식으로 보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곳(교도소)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 동안 좋은 책을 접해 훗날 사회로 복귀했을 때 후회 없이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탁 하나를 적어 보냈다. 다름 아니라 지난해 내가 출간한 책 『인문의 숲에서…』를 한 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간곡하고도 소박한 부탁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책을 챙겨 부쳤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분한 앤디 듀프레인은 본래 잘나가는 은행 직원이었다. 하지만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명 높은 교도소 쇼생크에 수감됐다. 그런데 간수들의 절세를 도와준 덕분에 그는 교도소 내 도서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써서 부치며 책 기증을 받아내 제대로 된 도서실을 꾸몄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음반을 발견한 그는 방문을 걸어잠근 채 그것을 틀었다. 교도소 전체에 아리아가 울려퍼졌다. ‘편지의 이중창’이었다. 교도소의 모든 죄수와 간수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선율에 빠져드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이때 모건 프리먼이 분한 레드는 이렇게 독백한다. “아직도 난 그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 여러 해 전, 언론인 얼 쇼리스는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인 비니스 워커라는 여죄수와 마주 앉았다. “왜 당신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여죄수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다소 의외의 대답을 했다. 쇼리스가 “그것이 뭐냐”고 재차 묻자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죠. 그냥 인문학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죄수의 뜻밖의 답변에 자극받은 얼 쇼리스는 얼마 후 사회의 그늘 속에 갇힌 노숙자, 빈민, 마약중독자, 죄수 등을 대상으로 살아있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열었다. 시와 그림, 철학과 역사를 배우고 특히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과 강연과 같은 ‘살아있는 인문학’을 접하며 그들은 자존감을 회복했다. 다시 살아낼 힘을 얻은 것이다. 자존감을 회복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결코 망가뜨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가 흉흉하다. 곳곳에 시체가 너부러져 있는 느낌이다. 무서워서 애들을 놀이터에 내놓을 수도 없다. 밤거리를 다니기도 겁난다.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해 법을 고치고 제도를 개선하며 기구를 신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따로 있다. ‘살아있는 인문학의 힘’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교도소에 책을 보내자. 그곳에 시와 음악을 흘려보내자. 그 앞마당에서 콘서트를 열고 오페라를 꾸리자. 그리고 그것들이 교도소 담장을 타고 넘어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음습한 곳들에 거꾸로 흘러들게 만들자. 정부와 언론, 기업과 학·예술인들이 함께 나서자.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의 환희를 우리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게 하자. 교도소의 담장, 그 안과 밖이 별반 차이 없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거듭나려면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지금 해야 한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