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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검은 케네디' 오바마의 힘은 감성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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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체인지!그 담대한 희망 오바마론
마틴 더퓌·케이스 보클먼 지음,
최지영 옮김,
늘봄,
314쪽, 1만5500원

#1. 2003년, 그는 일리노이주 주의회 의원이었다. 당시 그는 몇몇 이슈에서 친기업적 성향을 보였다. 낙태와 총기 규제 같은 논쟁적인 사회 이슈에 대해서는 ‘참석’이라고만 하고 찬성이나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이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효과가 있으면서 ‘정치적 가리개’도 제공했다. 동료 의원들은 그를 두고 “계산적인 면모와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야망이 있었다”고 했다.

#2. 그는 다른 후보와 달랐다. 직접 정치 자금을 모금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유세를 다닐 땐 차 안에서 전화를 돌렸고, 일주일에 30시간을 기부금 요청 통화에 쓰기도 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도 마치 오랜 친구인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는 미국 대선의 유력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다. ‘최초의 여성’,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걸고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경쟁의 주연으로서 그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케냐인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가족사에 비해 ‘정치인 오바마’에 대한 조명은 부족했다. 이 책은 그의 초짜 정치인 시절을 파고든다. 센트럴플로리다대 부교수(정치학), 웨스턴일리노이대 부교수(정치학)인 저자들은 ‘이름도 오사마 빈 라덴과 비슷한 이’가 어떻게 ‘록스타’가 될 수 있었는지 살폈다.

2006년 주 의회 상원의원에 출마하며 선거 정치에 발을 들인 오바마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 덕에 과거 처리된 비슷한 법안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 미리 알았다. 연설 능력도 뛰어나 경쟁 후보 보좌관이 “우리 후보가 저 능력의 반만 있다면…”이라 할 정도였다.

유연하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에서 ‘공화당스럽게’ 세액 공제 같은 시장중심적 해법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자신이 자유주의적인지,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지 정의해 달라는 요청에 “나는 그런 식의 분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슬쩍 넘겼다.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도덕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인신 공격이나 의미 없는 비판보다 아메리칸 드림 같은 긍정적 이슈에 집중했다.

게다가 힐러리를 누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오바마는 부시에 비해 현저히 페미니즘적이다. 패션 잡지용 포즈를 잡고,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여자들과 함께 요리를 만든다. 근육질 키우는 남자만 보다가 오바마를 보면 편안해진다”고 치켜세웠다. 빌 클린턴이 흑인을 위한 정책으로 ‘최초의 흑인 대통령’평가를 받았듯 오바마도 여성적 감성으로 여성 투표층을 감싸안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마지막에 웃을 지는 불분명하다. 정치학 교수인 필립 클링크너에 따르면 흑인 후보는 선거에 들어가면 여론조사 때와 대략 5%의 득표 차이가 난다. 백인들은 막상 투표장에 가면 과연 흑인이 정치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 조직 운영 능력, 정치력, 비전, 지적 능력, 감성적 지능 등 좋은 대통령의 자질로 꼽히는 요소를 오바마가 갖췄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이 될 것을 감안한 듯 “많은 이들이 오바마에 대해 유대감을 갖는다는 사실은 그의 업적이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는 이도 많으리라는 위험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한 사람이 미국 정치를 완전히 개혁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서도 오바마에 대한 열렬한 기대를 드러내는 책에 실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바람’이나 희망, 메시지도 없는 총선에 실망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대리만족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원제는 『Barack Obama, The New Face of American Politics』.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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