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현지르포>1.태양 사막 그리고 알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혼돈과 소음,무질서의 도시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교통사고는다반사로 일어난다.
세계의 중고차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카이로 시내 한복판,얽히고 설킨 차량들 사이로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양쪽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고,충돌부위를 살펴본다.
앞차의 범퍼가 우그러지고 트렁크가 찌그러졌다.
현장에 있다면 틀림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말리시,말리시』「괜찮다」는 얘기다.사고를 당한 앞차 운전자가 하는 말이 아니다.사고를 낸 뒤차 운전자가 이 말을 한다.『알라(神)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에 이 정도로 그친 게 얼마나 다행 이냐』는 소리다.앞차 운전자는『함둘릴라』(알라를 찬양하라)로 화답한다.그리고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다.그걸로 끝이다.
이집트에서 리비아.튀니지.모로코에 이르는 북아프리카 회교권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세가지가 있다.『인샬라』『부크라』『말리시』가 그것이다.로마자로 세 단어의 머리글자만 따 현지에사는 외국인들은 「아랍인의 IBM」이란 우스갯소 리까지 만들어현지인들의 이해못할 사고방식을 조롱하고 있다.
「알라께서 원하신다면」이란 뜻을 가진 인샬라는 상대방에게 약속을 할 때 주로 쓴다.우리말로 하자면「두고봅시다.잘되겠지요」정도의 의미다.부크라는 말 그대로「내일」이다.오늘 못하면 내일하고,내일 못하면 모레하면 되지 않느냐는 뜻으로 매사가 부크라다.리비아나 이집트에서 자동차끼리 부딪쳤다고 서로 으르렁거리며싸워봤자 사실 해결책이 없다.보험에 든 차를 찾기 어려운데다 평균 차령(車齡)이 십수년씩은 된 수입중고차를 몰고다니는 처지에 수리비를 물어줄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서구화가 많이 진행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서구적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오늘도 그들은 나름의 가치기준을 가지고,나름의 질서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카이로=裵明福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