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 노선의 조용한 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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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4일 총선에서 승리해 곧 스페인의 새 총리가 될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43) 사회노동당 당수는 국민에게 '조용한 사회주의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현란한 말솜씨나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실무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말수도 적다.

하지만 2000년 서른아홉살의 나이에 사회노동당 당수가 된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줬다. 당시 사회노동당은 1996년에 이어 총선에서 재차 패했으며 심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이에 그는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을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주창한 '제3의 길'노선을 수용했다. 시대와 유권자의 변화에 맞춰 현대적인 중도좌파 정당으로 면모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권을 되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혈기왕성한 젊은 좌파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우파나 지역주의자의 목소리에도 다양하게 귀를 기울이는 '황희 정승형' 정치인으로서 국민적 인기를 모아갔다. 그러면서도 좌파의 기본 원칙에는 충실했다. 그는 이라크전 참전에 초지일관 반대했다. 총선 공약을 이라크에서의 스페인군 철수와 주택난 해소.실업자 지원 등 좌파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었다.

덕분에 이라크전 참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의 마음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카탈루냐.바스크 지역 등 지역주의자가 지배하는 선거구에서도 많은 표를 얻었다. 60년 스페인 북서부 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난 사파테로는 열여덟살 때 사회노동당에 입당했다.

프랑코 독재 체제가 끝나고 다당제가 복구된 직후인 78년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86년 최연소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할아버지는 3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인 인민전선 측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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