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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서러운 나라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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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이클 무어 출연: 마이클 무어 외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선동적인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감독 마이클 무어가 이번에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도마에 올렸다. 미국의 총기 문제를 다룬 ‘볼링 포 콜롬바인’이나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을 맹비난한 ‘화씨 911’에 비해 ‘식코’는 국내 관객이 공감할 여지가 큰 편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 데, 돈 때문에 더 서러워지는 현실은 피부색과 인종이 달라도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식코’는 결정적인 순간에 보험 지급을 거부당한 미국인들의 황당하고 기구한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는데, 구급차 이용 사실을 보험사에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용 지급을 거부당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마이클 무어는 이런 일들이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해나간다. 다큐에 그려지는 바에 따르면, 공공보험이 기반인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민간보험사 위주다. 영리목적의 보험사들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조항을 동원해 보험료 지급을 거부하곤 한다. 이런 의료보험제도의 혜택을 아예 받지 못하는 미국인도 40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등장한다.

‘선동적’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이 다큐가 지루한 설교투가 아니라 자극적이고 신랄한 재미를 갖췄다는 얘기다. 보험료 지급을 거절당해 파산에 몰린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처럼 보는 이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순간도 적지 않다. 물론 이 정도로 만족할 무어가 아니다. 무어는 기록과 관찰을 넘어 직접 ‘쇼’를 연출해낸다. 의료비 때문에 고통 받는 한 무리의 환자들을 데리고 이라크 포로들이 수용된 미군의 관타나모 해군기지를 찾아간다. 기지 외곽에서 일종의 해상시위를 벌이면서 무어는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제공되는 데가 바로 이 포로수용소라는 역설을 주장한다. 다소 억지 섞인 퍼포먼스 같기도 하지만, 일행들은 내친김에 쿠바까지 가서 퍽 놀라운 일을 겪는다. 사는 형편이 그저 그런 쿠바에서 미국인 환자들은 미국에서 엄청난 비용에 구입했던 약을 그야말로 ‘껌값’에 손에 넣고 서러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무어의 방식은 논쟁적이다. 한 사안의 이쪽 저쪽을 고루 보여줌으로써 균형을 잡는 대신, 민간보험이 일반화된 미국의 현실을 당연시하지 않는 자신의 다큐가 새로운 균형점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입장처럼 보인다. 문제를 좀 더 사려 깊게 바라보려는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여지도 많다. 미국의 문제점과 대비시켜 캐나다·프랑스·영국 같은 다른 나라의 의료보장제도와 복지제도를 마치 완벽에 가까운 것인양 미화하는 대목이 그 예다. 이렇게 다소 무리를 하면서 다른 나라의 예를 끌어들여 무어가 주장하는 바는 명료하다. 경찰서·소방서가 그렇듯, 병원 역시 공공서비스로 충족돼야 하는 영역이고, 미국 바깥에는 실제 그렇게 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사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 다큐의 유효성을 평가하자면, 적어도 정보의 불균형성을 보완하는 기능은 있다. 각종 사회제도의 개혁을 논할 때마다 손쉽게 참고하는 대표적인 선진국이 미국이지만, 이 다큐가 신랄하게 고발하는 대로라면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한국에 수입을 권장할 만한 품목은 아닌 것 같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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