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 공략’이냐 ‘과잉 투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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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사천산업단지에 있는 SPP해양조선. 이 사업장 도크에서는 그리스 선주가 주문한 5만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두 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올 한 해 이런 크기의 선박을 17척 만들어내야 하기에 숨 가쁜 분위기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 실적의 두 배에 가까운 1조2400억원이다.

조선 호황으로 남해안을 따라 200여㎞의 조선 벨트가 생기고 있다. 경남 통영시에서 사천시를 거쳐 전남 신안군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에는 SPP해양조선 같은 중견 조선소 10여 곳이 건설되고 있다. 건립 부지를 모두 합하면 2000만㎡(약 600만 평)에 달한다. 이들 업체는 신생사라도 보통 3~4년치의 일감을 받아 놓고 있다. SPP해양조선의 김무영 상무는 “빅3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외의 업체들은 5만~10만t 급 중형 선박을 건조하는 틈새시장에서 재미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 조선업계의 과잉 투자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해운시장이 상당 기간 활황일 전망이고, 환경규제 강화로 선박 교체 수요가 많아 조선업 활황은 꽤 지속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역경제의 견인차=전남 광양시 명당지구 국가산업단지에 조선소를 지으려는 SNC조선해양은 지난해 6월 설립된 회사다. 이달 말 33만㎡의 부지에 조선소를 착공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그리스 선주회사에서 이미 벌크선 8척을 수주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울산조선소 일화처럼 조선소를 짓기 전에 주문을 받은 것이다. SNC조선해양은 조선소가 본격 가동되는 2010년부터 5년간 매년 2000억~95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3000명의 고용효과와 수십억원의 세수를 기대하는 광양시도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무실로 쓰라고 시 소유 건물을 무상 임대해 준 것이 일례다.

설립 3년차인 SPP해양조선의 수주 잔량은 중형 석유화학제품 운반선만 58척에 달한다. 소형 선박을 포함하면 100여 척에 이른다. 기존 설비를 다 돌려도 2011년까지 작업량이 모두 찼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사천시에서 표창을 받았다. 인구 유입을 유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 공로다. 이 회사 직원 2500여 명은 사천뿐 아니라 인근 진주·통영 등지에 산다. 김경용 과장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천 시내에 땅값이 뛰고 음식점 매출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원자재난·인력난이 숙제=배를 만드는 후판과 주물제품의 공급이 달리면서 값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에 비해 후판 가격은 20% 이상 뛰었다. 조선소가 많아지면서 숙련공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조선소에는 용접 등 숙련된 현장인력이 풍부해야 한다. 회사마다 자체적으로 인력을 양성하거나 폴리텍(옛 기능대학) 등과 산학협력을 맺어 조달하고 있지만 인력 수급은 풀리지 않는다.

업계 일각에선 과잉투자를 우려한다. 중국 조선업체들이 속속 대형 도크를 건설하면서 한국 조선업을 추격해 가격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성동조선해양의 정휘영 상무는 “빅3 업체들도 새 도크를 건설하면서 공격적 설비투자를 하고 있다”며 “상당 기간 시장이 좋다고 판단할 만하다”고 말했다.

광양·사천·통영=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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